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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신라는 여자를 세워 왕위에 있게 했으니, 실로 어지러운 세상에나 있을 일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新羅扶起女子, 處之王位, 誠亂世之事, 國之不亡幸也)' 김부식이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선덕왕(善德王)조를 통해 피력한 의견이다. 승하 후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은 최고의 여제에게 김부식은 왜 이런 악평을 했던 것일까.

우리나라는 3명의 여왕이 있었다. 선덕, 진덕, 진성여왕이다. 정사는 뒷전이고 미소년들과 환락에 빠져 나라를 말아먹은 최악의 진성여왕을 제외한 두 여왕은 훌륭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선덕여왕의 총명함을 강조하는 일화들은 전설이 됐다. 첫 번째가 교과서에도 실렸던 모란꽃 일화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자 당나라의 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선물로 보냈다. 그림을 본 여왕은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궁전 뜰에 씨앗을 심어 꽃이 활짝 피었는데 여왕의 말대로 향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신하들이 궁금해 하자 여왕이 대답했다. "꽃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이는 나에게 남편이 없음을 놀리고 있음이다."

두 번째는 두꺼비 일화다. 영묘사의 옥문지(玉門池)에서 겨울철인데도 많은 두꺼비가 모여 사나흘 동안 울어댔다. 이를 불길하게 여겨 왕에게 아뢰니 급히 병사 2천 명을 뽑아 서쪽 교외의 여근곡(女根谷)을 탐색하라 시켰다.

왕의 말대로 여근곡을 수색했더니 백제 장군 우소(于召)가 독산성을 습격하기 위해 병사 500명을 데리고 매복해 있었다. 백제군을 토벌한 뒤 신하들이 신기해하며 묻는 말에 여왕이 이치를 설명했다.

"두꺼비는 성난 눈을 가지고 있으니 적군의 모습이다. 그런데 옥문(玉門)은 여자의 생식기가 아니냐. 옥문지가 여성인 음(陰)을 상징하므로 음의 색인 흰색을 생각했고, 흰색은 방위로 서쪽인지라 군사가 서쪽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어진 말이 걸작이다. "남자의 생식기가 여자의 생식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게 되니, 이러한 이치로 적군을 쉽게 잡을 것이라 짐작했다."

이러한 설화가 실제 사건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이러한 설화들로 인하여 선덕여왕의 혜안이 백성들에게 크게 부각되었다는 사실이다. 모란꽃 설화로는 외교와 문화에 대한 식견을, 여근곡 설화를 통해서는 군사적인 재능을 선전했다.

총명하며 선정을 펼친 성공한 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선덕여왕은 불행한 여왕이었다. 성골의 전통에 따라 즉위했으나 여자이기에 국내외에서 무시당했다. 신라의 측근들은 숨통을 조였고 백제는 호시탐탐 공세를 엿보았다. 당나라 황제는 아예 사신을 통해 막말을 전했다.

"신라는 여인을 임금으로 삼아 이웃 나라가 만만히 보고 있다. 이는 주인을 잃고 도적을 받아들이는 격이므로 해마다 편안한 적이 없었다. 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친족 한 사람을 신라에 보낼 테니 임금으로 삼으면 어떻겠는가."

노골적으로 여왕 폐위를 거론한 것이다. 당태종의 발언으로 여왕의 권위가 크게 실추되자 신라의 최고 관직에 있던 상대등 '비담'이 "여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반란을 일으킨다.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이 '비담의 난'을 평정하던 중 사망했다.

헌정 사상 최초 여성 대통령의 영광을 안았다가 파면의 불명예를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신라의 여왕들과 비교하기도 한다. 행복했던 여왕은 없었다. 가장 좋은 이미지의 선덕여왕도 정치적으로 소외되었고, 군사적 위협에 시달렸으며, 강대국에게 무시당했다. 막판에는 내란까지 겪어야 했다.

외롭고 고단하며 두려운 자리, 왕관의 무게를 견딜만한 여제가 다시 등장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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