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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2.01 13:36:53
  • 최종수정2017.02.01 13:36:53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수운의 발달로 번성하던 옛 청풍은 제천에 철도가 건설되면서 모든 영화를 제천에 넘겨주었고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신은 쇠락한 청풍의 모습을 차마 보기가 어려웠는지, 아니면 수몰을 예고하려고 했는지 잠시 물속에 담가보는 시험을 한 것 같다. 1972년 8월19일의 대홍수로 강변에 위치한 청풍중고등학교는 철근콘크리트 2층 건물이라서 붕괴되지는 않았으나 1층 교실에는 책상 걸상이 뒤엉켜 둥둥 떠다녔고 운동장은 호수로 변했으며 한벽루의 기둥이 몇 십리 아래의 강 하류로 떠내려 간 것을 건져다가 복원했다고 한다. 마을의 흙집들은 무너져 내려 높은 지대에 터를 잡고 이주하여 새로 조성된 마을을 새마을이라 불렀다.

비봉산 아래와 읍상리의 높은 지대에 새로 조성된 마을은 새로 지은 집들이라 보기에는 깨끗해 보이지만 질서정연한 모습이 마치 북한의 시범마을인 대성리 마을을 연상시키곤 하였다. 마을에 살아남은 집들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어서 정말로 가관이었다. 내부는 보수를 하고 살기는 하였으나 충주댐 건설 계획이 시작되면서 수몰지로 지정되어 수해 복구가 임시적 조치만 이루어지고 주민들도 수몰지라서 외부 보수를 하지 않다 보니 마을의 몰골이 천년 만에 발굴된 고대 마을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청풍부가 있던 청풍 면소재지인 읍리는 강변을 따라 동에서 서로 길게 이어진 마을로서 남한강의 상류 쪽을 읍상리, 하류 쪽을 읍하리, 그리고 그 중간을 읍중리로 구분한다.

읍하리 서쪽으로는 황석 나루를 건너 청풍으로 오면서 계산리, 광의리, 연곡리가 있다.

계산리는 본래 청풍군 읍내면의 지역으로서 닭의 형국을 지녔다는 비봉산의 밑이 되므로 계장골, 계장곡(鷄場谷), 제장골, 또는 계산동리(鷄山洞里)라 하였는데 1914년 비봉면에 편입되면서 계산리(鷄山里)라 표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계산리의 어원을 살펴보면 닭(鷄)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다만 다른 지역의 지명에 흔하게 쓰이는 달기봉, 달기미, 달구벌 들의 '달기'는 원래 '높다, 크다'의 의미인데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음의 '달기, 달구(닭)'를 연상하여 '계(鷄)'로 변하게 되어 계명산, 계룡산, 계족산 등이 지명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특히 계장골, 계장곡으로 불리던 지명을 계산리(鷄山里)로 표기한 것은 '장'이 '잣'의 변형된 음으로서 산(山)의 의미임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며 계장골 이전의 음을 재구해보면 '달기잣골'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원 의미는 '달(높다)+기, 구(곶, 불거져 나온 땅) +잣(山) +골(마을)'로서 '높게 솟은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가 되며 여기서 높게 솟은 산이란 비봉산을 가리키는 것이다

광의리(廣儀里)는 지형이 편편하고 넓으므로 광의동리(廣儀洞里)라 하여 청풍군 읍내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광의리(廣儀里)라 하여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광의리는 들이 넓기도 하지만 소나무가 우거진 솔무정(松亭)이 있어 어린 아이들의 유일한 놀이터였으며 주민들의 추억의 쉼터였던 것이다.

연곡리(淵谷里)는 못의 안쪽이 되므로 '모단, 지내(池內)' 또는 '연리(淵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곡리라 하여 비봉면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읍리에서 동쪽으로 강을 건너면 향교가 있어 향굣골, 또는 교동리(校洞里)라 하였는데 일제시대에 행정구역 폐합으로 교동(校洞)이라 하여 금수면에 편입되었다. 청풍 향교는 원래 물태리에 있었는데 조선 선조 23년(1590)에 이곳으로 옮겨 지었으며 순종 융희 원년(1907) 7월에 의병대장 이강년이 일본군과 격전을 벌려 처음에는 승승장구하였는데 점차 일본군에 밀리면서 이곳에서 크게 패하게 되는데 이때 격전하는 중에 소실된 것을 다시 세워 보존하다가 1985년에 수몰되면서 물태리의 청풍문화재단지로 이전하게 된다.

예전에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각축장으로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던 청풍은 청풍강이 동, 서,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천연의 요새이며 청풍 남쪽의 높은 산 위에 사열이산성 또는 성열산성이라고 불리는 산성을 쌓아 청풍을 수호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청풍 읍리가 수몰되면서 행정관청과 주민들이 산성이 있는 이곳 물태리로 이전하여 오늘날 청풍의 중심지가 되었다. 물태리(勿台里)는 예로부터 물이 많이 나므로 매룬, 물태(勿台), 물태방리(勿台坊里)라 하였는데 결국 청풍호를 품에 안게 되는, 말 그대로 물태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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