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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10.25 17:59:07
  • 최종수정2016.10.25 17:59:07

조혁연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우리 역사에 공녀(貢女)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후기다. 고려 원종은 무신들에게 빼앗긴 권력을 되찾기 위해 수도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원종은 그 과정에서 원의 힘을 빌렸고, 고려는 그 대가로 부마국이 되었다.

원나라는 이때부터 사위나라 고려에 대해 해동청(海東靑·매) 등 각종 공물(貢物)을 요구하였다. 공물 목록에는 공녀(貢女)도 포함돼 있었고, 그것의 표면적인 이유는 원나라 병사 장가들기였다.

원나라를 무너트리고 중원의 패자가 된 명나라도 조선 전기까지 공녀를 요구했다. 조선은 영락제(永樂帝)을 시작으로 선덕제(宣德帝)까지 26년간 총 7차례에 걸쳐 1백여명의 공녀를 받쳐야 했다.

명나라의 제 3차 조선 공녀 요구는 1417년(조선 태종 17)에 있었고, 이때 2명의 10대 소녀가 선발되었다. 《태종실록》은 이에 대해 '중국에 진헌할 처녀를 가려 뽑게 하였더니, 황씨·한씨를 상등으로 삼았다. 황씨는 용모가 미려하니 고 부령 황하신의 딸이고, 한씨는 선연하니 고 지순창군사 한영정의 딸이었다'라고 적었다. 이 가운데 황하신의 딸은 처녀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황제가 황씨의 처녀 아님을 힐문하니, 그제야 이르기를, "일찍이 형부 김덕장의 이웃에 있는 조예와 간통하였다." 하였다. 황제가 성을 내어 우리나라를 문책하려고 칙서까지 작성하였는데(중략).'-<세종실록 6년 6월 10일자>

황하신의 딸은 형부 이웃에 사는 조예, 즉 노비와 사통해 임신한 경험이 있었다. 반면 한영정의 딸은 영락제의 총애를 받았다. 그가 바로 조선초기 대신 한확(韓確, 1403~1456)의 친누나로, 훗날 명태종의 후궁이 된 여비(麗妃)다. 한확은 우리고장 청주의 인물로,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는 도중에 요녕성 사하포(沙河鋪)라는 곳에서 병사했다.

명태종 영락제 모습.

'한확은 청주(淸州) 사람이니, 고려 시중 한강(韓康)의 먼 후손이다. 누이가 명나라에 뽑혀 들어가서 태종 문황제의 여비가 되었다.'-<세조실록 2년 9월 11일자>

1414년(영락 12) 이른바 조선 공녀들의 질투가 발단이 된 '어여(魚呂)의 난'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여비도 하옥을 당했고, 이 소식을 들은 고국의 생모 김씨가 충격으로 숨을 거뒀다. 이때 여비는 다음과 같은 치제문을 쓴 것으로 일부 출판물이 전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 어머님이 미수(米壽)에 이르시어 길이 강념하심을 누리실까 기약했더니 어찌 뜻했사오리까. 하루 아침에 영영 가시다니, 생사의 사이에 추념하오면 어찌 애통함을 이기리까. 이에 특별히 보내어 제사를 드리오니 영혼이 계시거든 하감하시고 흠향하소서.'-<박상진 저, 「내시와 궁녀, 비밀을 묻다」>

영락제 시기의 명나라는 중원을 제패하였으나 고비사막 등 북방까지 완전히 정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1424년 몽고 원정에서 돌아오다가 병에 걸려 그해 8월 진중에서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명초의 중국에는 순장 풍습이 존재했다. 여비도 이 '순장의 거미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424년 7월에 영락제가 죽자 여비는 다른 궁인 30여명과 함께 순장을 당했다. 박 작가에 따르면 당시 궁인들을 죽이는 방법은 오늘날의 교수형 집행 장면과 흡사했다. 먼저 마루 위에 나무로 만든 작은 평상을 높아 그 위에 서게 한다. 이어 목에 올가미를 걸은 후 평상을 밀어버리면 목이 매어져 죽게 되는 방식이었다.

/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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