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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10.19 15:46:18
  • 최종수정2016.10.19 18:07:23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 수필가

올해 리우 올림픽에서도 어김없이 양궁에서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면서 금메달을 휩쓸어오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러한 우리의 양궁 실력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활쏘기를 생활화해온 조상들의 덕분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나라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 무선 통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통신기술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 바탕이 바로 역·원·봉수와 같은 교통 통신 분야에서 고대로부터 축적된 기술과 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또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의 변화로 역이나 원의 터는 그 위치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고, 봉수터는 높은 산꼭대기에 있어 위치는 확인하기 어렵지 않으나 거의 파괴되고 변형되어 원형을 잃었다. 그렇지만 그 흔적들이 언어로나마 지명에 남아 있는 곳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급속한 개발로 지형이 변형되어 조상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옛 지명이 사라지고 있으므로 더 늦기 전에 지명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고 연구하고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 역원제(驛院制)는 고려 성종 때 12목이 설치된 이후 지방제도가 본격적으로 정비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개경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역로망을 형성해 22역도 525역이라는 방대한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조선 시대의 역원제는 대부분 고려 시대의 것을 활용하여 전국에 500여 개소의 역이 있었는데,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는 주요 도로에 대략 30리마다 역을 두었다. 원(院)은 교통의 요지인 역에 설치한 국립 숙박업소로 원주전(院主田)을 지급받아 원주(院主)가 이를 운영하며, 공무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 거미줄처럼 짜여진 연락망으로서의 역과 원이 있던 터를 가리키는 흔적들이 지명에 다음과 같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의 역말 '충주부의 연원도찰방(蓮原道察訪)에 딸린 인산역',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역말 '충주부의 연원도찰방(蓮原道察訪)에 딸린 감원역(坎原驛)',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쌍수리의 역말 '청주부의 율봉도찰방(栗峯道察訪)에 딸린 쌍수역', 단양군 영춘면 오사리의 역말 '충주부의 연원도찰방(蓮原道察訪)에 딸린 오사역', 옥천군 이원면 이원리의 역말 '토파역(土坡驛)과 우현원(牛峴院)', 충주시 단월동의 역말 '충주부의 연월도찰방(連原道察訪)에 딸린 단월역(丹月驛)', 제천시 한수면 역리 역말마을(충주호 담수로 옛길 소멸) '황강역(黃江驛)',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장림역에 딸린 용부원', 청주시 서원구에 위치한 원마루(원평) '청주부의 인제원(仁濟院)' 등은 그 지역에 있었던 역과 원의 이름까지 전해지지만 청주시 오창읍의 원리(院里 - 원골, 원동), 영동읍 부용리의 역말, 괴산군 문광면 문법리의 원터 등은 역이나 원이 있었다고만 전해지고 있어 실제로 역원이 있던 터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를 가진 말인지에 대하여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과 원은 옛날의 교통로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하겠다. 그리고 봉수는 전국을 5개로로 나누고 중요한 길목의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고 주연야화(晝煙夜火) 즉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보내는 통신수단이며 제도로서 오늘날 디지털시대를 열게 된 바탕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봉수대는 옛날의 통신 기술의 백미를 보여주고 있다. 국경의 중요한 군사 정보를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횃불을 이용하여 전달했는데, 정세의 위급한 정도에 따라 그 올리는 횟수를 달리하였다. 고려시대는 평상시에는 1번, 위급시에는 2번, 적이 침입하여 전투가 임박할 때에는 3번, 적군과 아군이 접전 중일 때는 4번의 봉수를 올렸고, 조선시대에는 홰의 수를 평시에는 한 개, 적이 나타나면 두 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개,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네 개, 적과 아군이 싸우기 시작하면 다섯 개를 올렸다고 하는데 이런 방법이 바로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의 원조가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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