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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공예의 구슬을 꿰자 - 해외사례 下.일본 가나자와

역사의 숨결 밴 전통공예 계승… '일본 속의 일본' 되다
500여년간 이어진 '평화의 시대'… 공예 등 여가문화 발전
금박·가가유젠·구타니 등 전통공예 계승 정책 역점 추진
유네스코 창의도시 지정… 대표 관광·문화도시로 부상

  • 웹출고시간2016.10.19 18:02:12
  • 최종수정2016.10.30 15:28:18

옛 도시의 모습과 풍습이 공존하는 가나자와 마을.

[충북일보] 일본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면 어디가 좋을까. 불과 1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토를 떠올리는 데 주저함이 없었을 것이다. 이젠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일본 여성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 1위로 꼽힌 가나자와 때문이다.

혼슈 중심부 동해와 마주한 가나자와는 일약 '일본 속의 일본'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화려한 관광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인구 47만의 중소도시이지만 매년 전 세계에서 70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지난 2009년 가나자와는 유네스코 공예부문 창의도시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 같은 비결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전통문화에 있다. 전통 민속공예를 창의적으로 전승해온 가나자와는 성공을 거둔 국제 문화산업도시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곳곳에 남은 마에다가의 체온

가나자와시청 전경.

이시카와현의 현청소재지가 있는 중심도시 가나자와는 동해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마주하는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다. 하쿠산에서 발원하는 사이가와강과 아사노가와강이 도심 사이를 흐른다. 맑은 날이 연간 19일에 불과할 정도로 비와 눈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조용한 도시 가나자와가 유네스코 창의도시네트워크에 가입할 수 있었던 계기는 뭘까. 전문가들은 전통공예를 중심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문화산업 덕이라는 분석이다.

가나자와의 문화산업 전통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가나자와는 일본 안에서도 뛰어난 공예 기술력이 모여 있어 전통 계승의 토대가 잘 갖춰진 도시였다. 1583년부터 가나자와 지역을 다스렸던 가가번 마에다가(前田家)가 무사와 서민들을 대상으로 노와 다도 등을 장려해서다.

마에다가는 중앙권력에 버금가는 대영주로, 1583년 가나자와성에 입성한 후 1869년까지 약 300년에 걸쳐 가가국을 통치했다. 문화예술에 높은 관심을 가졌던 마에다가는 가나자와를 문화예술도시로 만들고, 시민들이 공예에 능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전통예능에 사용되는 의상과 다기, 도구 등의 전통공예품과 생활용품, 미술품들은 마에다가의 원조로 더욱 활발하게 제작됐다. 그 결과 가나자와는 격조 높은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가나자와시에서 시민들을 위해 24시간 운영 중인 시민예술촌 전경.

시대가 변한 지금도 노와 다도 등의 예술문화가 순조롭게 계승되고 있으며, 전통 공예품은 일반 시민들의 생활 속에 밀접하게 녹아들었다.

가나자와는 400여년간 단 한 차례의 전란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옛 도시의 모습과 풍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도 가나자와에 남아있는 가나자와성과 겐로쿠엔, 히가시 찻집거리, 구타니야 미술관, 사무라이마을 등에서는 마에다 가문의 체온이 뜨겁게 느껴진다.

◇金의 도시, 금박공예의 발전

가나자와시립 야스에 금박공예관 전경.

"야스에 금박공예관에는 금박 역사의 흐름부터 금박공예 작품까지 가나자와 금박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죠. 금박은 은이나 금빛이 나는 물건을 두드리거나 압연을 통해 종이처럼 아주 얇게 눌러 만든 것인데, 가나자와에서는 금에 소량의 은과 구리를 섞어 만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키타카 가와카미(65) 야스에 금박공예관장이 취재진을 전시실로 안내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야스에 금박공예관은 금박공예가인 야스에 코메가 40년 전에 직접 투자해 건립했다. 10년 뒤인 1945년 야스에 코메는 가나자와시에 금박공예관을 기부했고, 이후 가나자와의 이름이 붙어 현재의 '가나자와시 야스에 금박공예관'이 됐다.

아키타카 관장은 현재 일본에서 생산하는 금박의 99%를 가나자와에서 만들 정도로 가나자와 금박은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아키타카 가와카미 야스에 금박공예관장이 전시관에서 가나자와 금박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나자와 금박이 유명한 건 일반 금박보다 두께가 월등히 얇아섭니다. 압연기로 얇게 편 후 특수 종이에 끼워 장인의 손길로 끊임없이 두드리면 0.0002㎜까지 늘어난 금박이 탄생하죠."

아키타카 관장은 가자나와 금박의 공정은 4가지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금박 제작공정은 은과 미량의 구리를 섞은 금합금을 롤 압연기를 이용해 직사각형 모양의 띠 상태로 늘이는 금 늘이기 작업을 시작으로 '히키이레'로 불리는 끼워 넣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늘인 금은 가미시코미(종이 준비하기), 즈미우치(즈미우치가미라고 하는 전용 와시에 끼워 넣고 사각으로 두들겨 늘이기), 시타테(준비), 가미시코미(와시 선별) 등의 공정을 거친다.

끼워 넣기 과정이 끝나면 우치마에라는 공정이 이어진다. 1분간 700회를 두들겨 늘이는 기계에 넣고 금박을 주 종이에 옮기는 작업을 한다. 주 종이에 옮겨진 금박은 반복해서 두드려야 한다. 금박 제조의 마지막 공정은 두드리기가 끝난 금박을 대나무로 만들어진 박 전용 절단기로 일정하게 잘라 크기를 맞추는 작업으로 마무리된다.

야스에 금박공예관은 전시관 내부에 금박스크린을 설치,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아키타카 관장은 "16세기 말 당시 마에다 가문의 적극적인 장려로 가나자와의 많은 장인들이 금박공예 부문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에도 막부가 금박제조를 에도와 교토 등의 지역으로 제한하면서 가나자와에서 공식적으로 금박공예가 부활한 건 19세기 후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이 금박의 역사가 더 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금박공예관을 방문한 관람객이 공예품을 살펴보고 있다.

현재 가나자와의 금박공예는 국가 지정 전통공예로, 대규모 지원을 받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가나자와기술진흥연구소 등 유관기관들은 금박공예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금박공예를 전수받는 학교도 있다. 이곳에선 금박공예를 평생의 업으로 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전통의 대가 끊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이다. 우리의 문화예술 정책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역사 계승·발전… 전통공예 요람으로

가나자와는 가가유젠부터 구타니, 칠기, 불단 등 다양한 전통공예의 요람이다. 시내에만 40여곳에 달하는 전통공예숍들이 활발하게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기모노에 화려한 무늬를 넣은 가가유젠의 역사는 540년 전 우메조메가 기원으로 밝혀졌다. 교토유젠인 교유젠의 도안회된 무늬와 다르게 가가유젠은 사실적인 회화조가 특징이다.

가나자와의 가가유젠 공예인들은 사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요 모티브로 그라데이션 기법 등을 활용해 자연미를 능숙하게 그려낸다. 최근에는 기모노뿐 아니라 가가유젠 포목을 이용한 지갑, 벽걸이 등의 잡화도 제작돼 젊은 여성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가나자와 도자기 구타니는 가가번이 1806년 교토의 명장을 불러 가나자와에 가마를 만들게 하면서 시작됐다. 가가번의 원조로 구타니 문화는 점점 확대됐다. 구타니야키의 화려하고 호화로운 이미지는 해외에서도 인기를 떨쳐 '재팬 구타니'라는 이름표를 달고 수출길에 오르고 있다.

칠기도 가나자와의 대표 전통공예다. 가나자와 칠기의 역사는 1640년 무렵 시작됐다. 교토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귀족문화와 에도의 강한 무가문화가 융합된 것이 특징이다.

가나자와 공예의 호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불단.

일본 불자들의 집에는 생소한 것이 있다. '불단'이 그것이다. 가나자와 불단은 내구성이 강한 은행나무나 아오모리 노송나무 등의 목재를 사용하며, 본체 기지부분은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가나자와 불단은 목재를 짜 맞춰 견고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중시한다. 금박 장식을 여기저기에 더한 불단은 가나자와 공예의 호화로움을 볼 수 있는 예다. 최근에는 생활양식의 변화로 소형화·단순화한 불단들을 생산, 전통기술이 끊이지 않도록 계승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미술관 건립… 새 이미지 구축

가나자와시 21세기미술관 전경.

가나자와 시청 인근 위에서 내려다보면 둥근 원반 같은 독특한 건물에 유리로 만든 벽이 인상적인 미술관이 있다. 통통 튀는 즐거움이 가득한 이곳은 지난 2004년 10월9일 개관한 가나자와 21세기미술관이다.

미술관은 계획부터 야심차게 출발했다. 메이지유신 시절 가나자와는 일본의 5대도시로 성장했지만,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정체의 길을 걷게 됐다. 이에 가나자와시는 고즈넉한 느낌의 도시 이미지를 타파하고 새로운 이미지 구축작업에 나섰다. 이 작업의 일환이 도심 한가운데 들어선 21세기미술관이었다.

미술관은 단층으로 지어져 위압적으로 관객을 압도하지 않는다. 또한 일본의 3대 정원으로 손꼽히는 인근의 겐로쿠엔 정원, 그리고 고풍스런 가나자와 성과의 어울림도 이질적이지 않다. 마을 속에서 자연스럽게 투명한 모습을 드러내는 미술관이다.

가나자와시 21세기미술관 정원에 설치된 작품.

어느 곳에서도 입장할 수 있도록 앞뒤가 없는 뻥 뚫린 구조의 미술관은 2010년 40대 젊은 나이에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하며 일본의 대표적 스타 건축가로 떠오른 니시자와 류에(Nishizawa Ryue)의 작품이다.

미술관은 1980년 이후에 제작된 국내외 작품을 중심으로 회화, 조각, 디자인, 사진, 영상 등 폭넓은 분야의 미술품을 전시 중인 유로존과 아트 라이브러리, 뮤지업숍 등이 있는 무료존으로 나뉜다. 무료존에서도 볼만한 상설 전시가 마련돼 알차다.

미술관 주변에는 이시카와 근대문학관과 현립미술관, 현립역사박물관 등이 모여 있어 문화 명소 가나자와의 명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전통공예 기반 문화예술 정책 역점… 유네스코 창의도시 지정 쾌거"

히로쓰구 누노시마

가나자와시 경제국 크라프트정책추진과장

가나자와시 경제국 크라프트정책추진과장 인터뷰

-유네스코 창의도시 지정을 위해 시에서 어떤 노력을 했나.

"전통공예와 문화예술의 도시 이미지를 심기 위해 정부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현재 가나자와 시에서 관리하는 공예 관련 시설은 야스에금박공예관, 나카무라기념미술관, 21세기미술관 등 다양하다. 공예인 양성을 위한 교육 인프라도 마련했다.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 등은 인재양성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전문예술인뿐 아니라 신진예술가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시민문화공간인 시민예술촌이 대표적인 예다. 시에서 관리하는 이곳은 24시간 운영된다. 5개 건물에 연극, 음악, 공예 등 다양한 시민문화단체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유네스코 창의도시 파급효과는.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된 이후 세계 곳곳에서 가나자와 전통마을의 성공 비결을 연구하기 위해 시찰단을 파견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도쿄에서 직통으로 연결되는 신칸센이 개통됐다. 덕분에 많은 일본 내국인 관광객이 가나자와를 방문하고 있고, 이제는 교토에 버금가는 관광도시로 발전할 조짐이다. 아직은 한국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한국인 관광객은 많지 않은 편이지만, 문화 예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한 번 방문해 볼만한 곳이다."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공예 관련 정책이 있나.

"가나자와의 전통공예는 종류가 매우 방대하다. 때문에 지원금의 규모도 큰 편이다. 예를 들면, 인간문화재뿐만 아니라 그 기술을 전수받는 제자들에게도 대략 월 50만원 가량의 지원금을 3년간 지급한다. 이밖에도 아트컨설팅 등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21세기미술관을 중심으로 가나자와의 숨겨진 박물관과 전통문화 탐방을 운영 중인데 관광객들의 호응이 좋다."

-현재 시청 내 공예분야 전담부서가 있는 것으로 안다.

"제가 속한 경제국 영업전략부 크라프트정책추진과다. 1년 예산은 인건비를 제외하고 3억3천만엔 정도다. 공예시설 정비 등 순수하게 공예인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쓰인다고 보면 된다. 도쿄 등 타 지역의 판로 확보를 위해 지원하기도 한다. 크라프트정책추진과를 중심으로 시에서는 가나자와의 문화는 곧 전통공예와 미술이라는 관념을 갖고 있다. 이에 가나자와 문화 속에서 전통공예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유소라·석미정·성홍규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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