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충북 애국지사 많다

광복회 충북지회도, 확인된 지역 출신 애국지사 800여명
460여명 훈장 등 성훈, 사실 확인 어려워 못 받는 경우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사실 알려져 후손 피해볼까 '쉬쉬'
후손들 이름 바꾸며 도피생활 등 확인 안 되는 경우 많아

  • 웹출고시간2016.08.11 19:29:23
  • 최종수정2016.08.13 19:15:55
[충북일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손병희(1861~1922), 신채호(1880~1936), 한봉수(1883~1972) 선생.

이름을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역을 대표하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다.

그렇다면 고(故) 최영백·박종철·정옥모·이병돈 선생은 어떨까.

이들 역시 지역 출신 등으로 독립운동에 전념한 이들이지만 이들의 이름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청주 출신 최영백 선생은 지난 1941년 당시 대구 봉정동에서 권쾌복·배학보 선생 등 15명과 항일학생결사인 다혁당을 조직·활동했다.

박종철 선생 역시 청주 출신으로 청주 제일공립중학교 재학 중 일본 식민정책에 반대, 신사참배 등을 피하기 위해 규합하는 등 활동을 벌이다 발각, 옥고를 치렀다.

보은 출신 정옥모 선생은 광복군에 소속돼 적 정보수집·초모공작활동 등을 벌였고 함경도 출신인 이병돈 선생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다 청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나라를 찾기 위해 몸을 던졌지만 후세에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애국지사는 지역만 보더라도 상당수다.

김원진 광복회 충북도지부장은 "광복회에서는 도내 출신 독립운동가 등 애국지사가 800여명에 달하며 이중 460여명이 훈장 등 성훈을 받았다"며 "지난 1982년 충북도지부가 생겼을 때 지역에는 모두 5명의 애국지사가 생존해 있었고 현재는 진천에 오상근(92) 선생만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애국지사가 상당수"라며 "무엇보다 독립운동 사실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 거나 훈장 등 서훈을 받지 못한 애국지사도 상당수"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아직 확인조차 되지 않거나 서훈을 받지 못한 애국지사가 상당수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적 상황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지금이야 독립운동을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일로 여겨지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가족이나 조상의 독립운동 사실을 숨겨야 했다.

당시 독립운동가의 가족이나 후손들은 쫓기는 신세로 전락해 이름까지 바꾸고 숨어들어 현재까지 그 행방이 묘연한 경우가 상당수다.

독립운동 사실이 드러날 경우 당사자는 물론 가족까지 목숨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애국지사 후손 중 일부는 자신의 조상이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을 아예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이 같은 사실이 무뎌지면서 현재 알려지지 않거나 사실 확인이 어려운 독립운동가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부장은 "당시 독립운동 사실을 숨기기 위해 후손들은 도망다니 듯 살아야 했다. 독립운동 사실을 알리지 않아 후손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며 "독립운동 사실 등이 확인되더라도 정작 이를 확인해 줄 후손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광복회에서는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애국지사 발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 역시 친일파로 전향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물론 호화롭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도 있었다"며 "광복절을 맞아 수 많은 독립운동가 등 애국지사들이 왜 이런 상황을 뿌리치고 가족과 후손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국가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는지 그 의미에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고 했다.

/ 박태성기자 ts_news@naver.com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아너 소사이어티 충북 72번째 회원' 변상천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

[충북일보] "평범한 직장인도 기부 할 수 있어요." 변상천(63)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은 회사 경영인이나 부자, 의사 등 부유한 사람들만 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1월 23일 2천만 원 성금 기탁과 함께 5년 이내 1억 원 이상 기부를 약속하면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충북 72호 회원이 됐다. 옛 청원군 북이면 출신인 변 부사장은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을 도와 소작농 생활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그의 집에는 공부할 수 있는 책상조차 없어 쌀 포대를 책상 삼아 공부해야 했을 정도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삼시 세끼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마을의 지역노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했다. 변 부사장은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왔다"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옥천군청 공무원을 시작으로 충북도청 건축문화과장을 역임하기까지 변 부사장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아지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