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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주민도 잘 모르는 이 詩의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시인 이흡
1930년대 이효석·이무영 등과 '경향파' 활동
가난때문 군포 이주, 고향그리며 시 '信義室'
6.25때 전주서 실종, 총살·월북 지금도 모호

  • 웹출고시간2016.06.23 16:24:08
  • 최종수정2016.06.24 11:04:28
[충북일보] 한국전쟁(6.25)이 일어난지 66주년을 맞고 있는 가운데, 시(詩)가 새겨진 한 마을 표지석이 새삼 오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충주시 신니면 신의실 마을 입구에 서있는 표지석 모습.

충주 신니면 용원부락에서 노은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들판 끝자락의 신의실(信義室) 입구에 이르러 시가 새겨진 이 마을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마을 표지석 밑에 새겨진 시는 '信義室'로, 작자는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이흡(李洽, 1908~?)이다. 그러나 지금의 마을주민 누구도 이흡이 누구이고, 또 그의 시가 왜 마을 표지석에 새겨져 있는지 모르고 있다.

이흡은 청주 남이면 출신의 팔봉 김기진(金基鎭, 1903~1985)이 1934년 펴낸 〈조선문학의 현재의 수준〉이라는 글에서 이효석·이무영·채만식·유진오 등과 함께 사회주의 성향의 '경향파'로 분류했던 시인이다.

본명이 이강흡(李康洽)인 이흡은 1908년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 신의실 마을에서 아버지 이기종과 어머니 은인순 사이에서 1남6녀의 외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던 지식인이다.

그리고 인근에는 그와 동갑·동향·동창으로, 후에 농민작가로 명성을 날리는 이무영(李無影, 1908~1960)이 살았다.

훗날 이흡이 《신동아》(1936. 2)에 기고한 글을 보면, 유년시설 이무영은 조선의 톨스토이, 이흡은 조선의 괴테를 꿈꿨다. 그런 두 사람은 글을 쓰면 가장 먼저 보여줄 정도로, 절친 이상의 문학적 동반자였다.

이흡에 대한 단 한 편의 논문인 <이흡의 생애와 고찰〉(서번석, 현진오총2권, 1994)을 보면 그는 가난 때문에 고향 신의실을 떠나 1930년대 경기도 군포에 정착하였다. 신의실 마을 표지석 아래 새겨진 '信義室'이라는 시는 당시 군포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사향시(思鄕詩)이다.

마을 표지석 아래에는 이흡의 시 '信義室'이 새겨져 있다.

'信義室은 고요한 마을 / 信義室은 나의 젓엄마 // 꿈엔들 잊으랴 아쉽고 보곱하라 / 동무야! 山川아! / 앞개울에 아가시아 꽃피고 / 뒷동산에 솟족새 울고 // 國望山 같은 큰 맘에 안겨 / 아츰이면 해뜨자 들로 나가고 // 迦葉山 같은 열정에 안겨 / 저녁이면 내일을 마련하고 /…/.'-<'信義室' 부분>

6.25가 발발하자 그의 경향파 시인 분류는 곧 불어닥칠 불행의 예고로 작동하였다. 그는 6.25동란 와중에 2남1녀를 모두 잃었고(실종), 그 또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가 왜 수감됐는지 밝혀진 것은 없으나 사회주의 성향이 이유가 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다시 전주교도소로 이감되어 수감생활을 하던 중 역시 실종됐다.

이에 대해 《한국근대문인대사전》(1990)은 "사살당함"이라 해놓고 다시 "해방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했다가 행방 불명되었다"라고 상이한 서술을 하였다.

반면 《월북작가대표문학-50선》(1989)은 그를 월북작가라고 판단, 김억과 함께 제 19권에 수록하였다.

이흡의 고향 신의실에는 서박사의 논문 작성에 도움의 준 조카 이찬재 옹이 생존했었으나 지금은 고인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이흡의 법적 생존여부와 작품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상당부분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 표지석에 누가, 어떤 동기로 이흡의 시를 새겼는지도 주민들을 통해서는 잘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조혁연 객원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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