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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총장, 서애 류성룡 고택 방문 왜?

조선 중기 주류는 경기·충청 서인 중심의 기호학파
서인과 대립각 형성한 비주류 동인, 영남학파 분류
외교가·국난 극복 이미지로 영충연합 검토 가능성

  • 웹출고시간2016.05.29 18:47:00
  • 최종수정2016.05.29 18:47:00
[충북일보] 충북 음성 출신의 반기문 총장은 지난 28일 서울 신당동에서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만났다. 김 전 총리는 한때 충청의 맹주였다.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시대부터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까지 역사의 산증인이다.

특히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은 정치철학상 도저히 불가능했던 사례다. 그럼에도 DJP 연합은 1992년 김대중 정권을 탄생시켰다.

김 전 총리는 반 총장을 차세대 리더로 생각하고 있다. '충청대망론'과 관련해 김 전 총리는 반 총장 중심의 역할론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 총장은 29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의 서애 류성룡 고택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기념식수를 했다. 이날 식재된 나무는 주목(朱木)이다. 호사가들은 주목을 '제왕의 나무'라고 부른다.

서애 류성룡 선생은 조선 선조시대 동인을 대표하는 재상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류성룡은 당시 왕의 특명으로 병조판서를 겸임하면서 군기를 관장하게 되었고 영의정에 올랐다.

1593년 호서, 호남, 영남을 관장하는 삼도 도체찰사라는 직책을 맡아 전시 상황의 군사 업무를 관장했다.

그러나 일본과의 화친을 주도했다는 누명을 씌운 북인 세력의 거센 탄핵으로 영의정에서 파직됐다.

억울함을 안고 1594년 고향인 안동 하회마을로 낙향했다. 하회에서 은거하는 동안 그의 누명은 벗겨지고 관직은 다시 회복됐다.

그러나 7년간 왕의 부름에도 거절하며 고향을 지켰다. 1607년 향년 66세로 운명했다. 류성룡이 세상을 뜨자 선조는 3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승지를 직접 보내 조문하도록 했다.

상인들은 4일간 장사를 하지 않으며 경세가의 죽음을 슬퍼했다. 또 서울 옛집이 자리했던 묵사동에는 약 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류성룡은 선견지명적인 인재등용과 자주적 국방으로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슬기롭게 헤쳐나간 명재상이었다.

그의 업적은 평가절하된 측면이 많다. 배경에는 물론 당쟁(黨爭)이 있었다.

당시 주류는 기호학파였다.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을 근거지로 한 이이(李珥)·성혼(成渾) 학파다.

당색(黨色)으로 볼 때 기호학파는 서인의 주축을 형성했다. 반면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학파의 당색은 동인이었다.

영남학파는 퇴계 이황(李滉)이 주도했다. 조선 선조시대 임진왜란의 풍전등화 속에서도 동·서인의 대립은 국난을 부채질했다.

류성룡은 퇴계 이황의 제자였다. 그는 외교가이자 국난을 극복한 통합의 리더였다. 비록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에 비해 그의 업적은 크게 조명되지 않았지만, 류성룡과 이순신은 조선을 구한 영웅이었다.

반 총장이 류성룡 고택을 방문한 것은 정치적으로 여러가지 해석을 불러오고 있다.

1992년 김종필 전 총리가 DJP 연합을 통해 김대중 정권을 탄생시킨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이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뉴 DJP 연합론'과도 배치되는 행보다.

야권은 현재 4명의 대선주자가 두드러진 정치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 더민주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다.

여기에 손학규 전 고문까지 더민주 또는 국민의당에 합류하면 야권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잠룡은 무려 5명이나 된다.

반면, 4·13 총선에서 대패한 새누리당에는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연말 UN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는 반 총장은 새누리당 입장에서 볼때 독보적인 대선주자로 볼 수 있다.

반 총장은 외교관이다. 시골에서 태어난 반 총장은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우리나라를 넘어 글러벌 리더로 성장했다.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의 '흙수저'들에게 큰 감명을 던져주고 있다.

그런 반 총장의 이번 류성룡 고택 방문은 사실상 대권플랜과 맞아 떨어진다. 북한의 핵도발 위협과 조선시대 당쟁에 버금가는 국회 상황, 글로벌 경제위기, 사회적 갈등 등 어떤 이슈 하나 참담하지 않은 사례가 없다.

반 총장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글로벌 외교를 통한 남북문제 해결,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통합의 정치를 표방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국난을 극복한 불세출의 영웅 류성룡 선생의 생애와 닮았다.

이제는 반 총장이 류성룡 선생을 능가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단순한 영남·충청 연합으로는 또 다른 지역구도를 자초할 뿐이다.

서울 / 김동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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