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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자

봉정초 교감

점심을 먹고 교무실로 들어오니, 나를 찾는다는 전화에 무엇에 홀린 것 같이 정신이 아득하다. '이럴 수도 있구나, 꿈에도 그리운 첫 부임지의 제자가 전화를 하다니'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있다는 말에 꿈결처럼 기억 저편의 지나간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가 겨우 마을에 도착을 했다. 차도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돌길을 걸어서 산 하나를 넘고 고개를 넘었더니 산등성에 자그마한 마을이 하나 기대어 있었다. 흙벽돌로 지어진 기와집, 초가집, 나무껍질로 엮은 집들이 마치 형제들처럼 따사로운 햇볕을 담고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첫 가정 방문이었다. 선배 선생님들과 함께 간다는 것에 소풍을 가듯 더 의미를 두었고, 학교를 나왔다는 그 자체가 그저 즐거웠던, 그래서 무엇 때문에, 왜 가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도 못한 철부지 선생의 가정방문이었다.

힘들게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동네 어귀에 아이들이 서성이고 있다. 아마도 가정방문 오는 선생들을 기다리고 있음이리라. 가정방문하는 날은 아이들이 대청소하는 날이다. 하교를 하고나서 곧장 집으로 와 집을 쓸고 닦고, 그리고 나서도, 집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동네 어귀에 나와 마중을 했던 것이다.

아이를 따라가니 돌담과 돌담사이를 지나 울도 담도 없는 허름한 짐에 꾸부정한 할머님이 반갑게 병아리 선생을 맞이하신다. 마루에는 예쁜 자개장식이 있는 개다리소반에 노란 빛의 음료가 담긴 컵이 놓여 져 있었다. "빛이 따가웠지예? 오느라고 고생 많았니더" 할머님의 말씀에 아이가 수줍은 듯 음료를 건네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이는 자주 결석을 했고 한글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으며, 준비물은 아예 가져오질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 선생은 어쩌다 학교에 오는 아이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실해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훈계를 하거나 회초리로 댔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혼을 내도 아이를 위하는 것이라면 선생은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으니 지금도 그 아이를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해지고 미안한 맘 지울 길이 없다. 농사철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시고, 어린 동생과 늙으신 할머니를 돌보느라 아이는 늘 바빴던 것이다. 지금처럼 먹을거리와 물질이 넉넉지 못했던 시절이었는데, 단순하게도 아이의 게으름으로 치부를 했으니, 선생의 무지몽매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새 학년이 되면 당연했던 가정방문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요즈음 아예 학교현장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학생들의 생활습관이며 학부모의 바람을 들으면서 아이들 이해에 도움을 주었던 가정방문이 없어진 것은 여러 가지 사라진 교육활동 중에서 가장 아쉬운 일이 되었다.

앨범에서 아주 오래된 사진 하나를 꺼내어 한참을 들여다보며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한낮의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 날, 체육수업을 하기위해 학교 앞 개울로 나갔다. 아이들은 잠시 수줍어하더니 옷을 훌훌 벗고서 달랑 팬티하나만을 걸친 채 물놀이를 신나게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렇게 물놀이를 하고서 급식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니 점심은 숙직실에서 큰 양푼을 가져다 싸가지고 온 밥과 반찬을 모두 쏟아놓고서 비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지금처럼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학원으로 가질 않았다. 학원도 없었지만 집에 가봐야 부모님 일을 돕거나 동생을 돌보거나 그도 아니면 혼자 있어야 했기에 아이들과 놀기 위해서라도 학교가 제일 편했던 것이다.

아름다움만 기억되는 젊은 그 새내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교사라면 누구나 할 것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가르치기기보다는 아이들로부터 배우며 교사들은 성장 한다. 이미 폐교가 되어버린 내가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섰던 그 자리, 언제가 아이들을 만난다면 용서를 구하며, 운동장에 같이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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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