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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구녀산(九女山)은 구녀성으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다. 구녀성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백제의 낭비성(지금의 상당산성 또는 삼년산성)과 대결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산의 내부는 성터로써 우물과 수원지의 흔적이 남아 놀이와 휴식에 적합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전망이 좋아 서북쪽 미호평야와 청주의 상당산성이 건너다 보인다.

구려사라는 절터가 있는데 1950년대에 두 노부부가 절터 옆에 오막살이집을 짓고 살았었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 등록 안된 사찰이라 하여 철거당하여 산밑의 텃골 마을로 내려왔는데 그 노부부 아들이 구녀사를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 구녀사에서 구녀산을 올라가다 보면 성터까지 가기 전에 비석이 없는 묘 11기가 있다. 구녀성의 전설은 이 묘까지 연관지어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딸 아홉과 아들 하나를 둔 홀어머니가 그곳에 살았는데 모두가 기골이 장대하여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하루는 노승이 그 집을 찾아와 아들이 액운이 들어 얼마 못 살 것이라고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홀어머니는 노승을 붙들고 액운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다그치자 노승은 난감하면서 아들을 살리려면 딸 아홉을 모두 죽여야 한다는 처방을 알려주었다. 홀어머니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아들과 딸들 간에 생사를 건 내기를 하게 하였다. 아들에게는 나막신을 신고 송아지를 끌고 서울을 다녀오게 하고 딸들에게는 성을 쌓게 하였다.

아들이 쉽게 이기리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홉명의 딸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서 성을 거의 완성하게 되자 홀어머니는 노심초사하여 머리를 짜내었다. 뜨거운 팥죽을 끓여놓고 딸들을 불러 이제 성을 다 쌓았으니 팥죽을 먹고 나머지를 완성하라고 하자 딸들은 뜨거운 팥죽을 빨리 먹지 못하고 후후 불면서 먹고 있는 중에 아들이 집에 도착하였다. 그래서 딸 아홉은 죽임을 당하여 구녀성 안쪽에 묻혔는데 위쪽에 위치한 부모님의 무덤 두 기를 합쳐 모두 11기의 무덤이 같이 모여 있게 되었다고 한다.

청주시의 동쪽 미원면 대신리 종암리와 내수읍 우산리의 경계에 걸쳐 있는 구녀산은 원래 구라산(句羅山)이라고 불렀으나 이곳 축성 설화와 관련하여 구녀산으로 불리고 있는데 해발 497m의 구라산에 축조된 포곡식 석축산성이 구라산성이며 고려산, 궁예산, 구녀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청주)에 "구라산(謳羅山)이 주의 동쪽 41리에 있다."는 기록과 동일 문헌에 "구라산성은 돌로 쌓았고 둘레는 2,790자이며 안에 우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허물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청원군지』에 의하면 이 산은 원래 '구려산(句麗山)', '구라산(謳羅山)' 등으로 불렸는데, 이 산에 있던 절터에서 영해객(嶺海客)이란 인물이 쓴 등시(登詩)의 시구에 '구녀사시구려사 구려성시구녀성(九女寺是句麗寺 句麗城是九女城)' 구절로 인해 '구려사, 구려성'이 구녀성 전설과 연관지어 '구녀사, 구녀성'으로 불리게 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녀'의 어원은 '구라', '구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남 남해군 설천면의 구라산,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강화도의 고려산, 경남 창원시 진해구와 김해시 장유읍에 걸쳐있는 굴암산 등으로 보아 산 이름에 '구려'계의 어휘가 많이 쓰였는데 '구려'는 고구려의 나라 이름에 쓰인 말로 고구려 말에서 성읍을 뜻하는 '골', '구루' 등의 의미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따라서 구녀성이란 '골짜기에 있는 성'이란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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