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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11.01 17:29:3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장정환

한전 충북본부 홍보실장

대략 난감,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제발 이번만 봐 주세요. 큰 애가 다음 주부터 시험인데 공부는 하게 해야지요.", "아 글쎄 안돼요. 나도 먹고 살아야지. 집사람이 출산달인데 나도 봉급은 받아야 먹고 삽니다."

몇 년전의 일이다. 지금은 한전에서 전기요금을 받지 않지만, 밀린 3개월치 전기요금을 내기위해 부랴부랴 달려온 터였다. 행색도 허름한 이 아주머니는 방 한칸 딸린 식당을 마련하기 위해 급전을 사용했고, 뒤따라온 양복차림의 말쑥한 30대 남자는 채권추심인이었다.

민원실에서 두 사람의 대화내용을 우연히 듣게 된 나는 차가운 가을바람처럼 신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 전기요금을 내지 못한다면 내일 단전이 되어 식당문도 못 열고 중학생 아들은 시험공부도 못할 게 뻔한 일이다. 파르라니 면도한 갸름한 얼굴로 머뭇머뭇 채근하던 그 채권추심인은 급기야 소리를 지르며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만 힘든 게 아니에요. 나도 죽을 맛이라구, 제길, 나도 밀린 방세를 내야 한다구, 나 참 더러워서". 거의 빼앗다시피 돈을 가로챈 그 30대는 사라졌고 체납 전기요금을 내려고 왔던 아주머니는 눈물만 훔치다 맥없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런 일과 마주친 날이면 세상의 거대한 중력이 가슴을 짓누르듯 답답했다. 먹고 사는 일, 미뤄둘 수 없는 밥벌이의 그 절박하고 끈질긴 굴레로 마른 목이 타 들어갔다.

살아가는 일은 이렇듯 크나 큰 현실이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들은 생존의 굴레 속에서 하루하루 그들의 존재감이 사라져가고 현실의 냉정한 거래만 상처처럼 남겨진다.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너무 염려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정호승의 시, 밥값 中에서) 밥값을 하기 위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끈질기게 내달려야만 인간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이 말이 비장하다 못해 결연하게 들린다. 밥값을 한다는 게 사람값을 한다는 말이런가. 밥벌이가 지겹다고 말한 어느 작가는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한평생 목이 메었다고 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내몰아 밥을 벌게 하니 밥에는 대책이 없다고 한다.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고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닐진대 이걸 잊지 말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고, 밥벌이에 무슨 도리가 있냐고 묻는다. 그의 말대로 밥벌이에 무슨 도리가 있으며 무슨 대책이 있을 것인가·

휴일에 다녀온 가야산 단풍잎은 발갛게 젖어 있었다. 세끼니 밥을 벌기 위한 신산고초의 가장(家長)들은 그들의 눈가가 발갛게 젖어갈 때이다. 내게 허락된 이 가을산의 여유에 또 다른 허기진 사람들의 헐벗고 추운 겨울을 생각한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세상에서 이유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 때문에 울고 있다.' 릴케는 그의 '엄숙한 시간'을 이렇게 연민으로 표현했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저 홀로 고고한 게 없듯이 이 세상 가장들의 밥벌이에 저 혼자 존재하는 것은 없다. 지금 내가 울고 있는 것은 도시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불모와 결핍과 추위와 외로움으로 무릎 꺾은채 고개 숙여 흐느끼는 또 다른 가장들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며 그 비린 밥벌이를 하는 세상의 모든 가장들에게 진심으로 손을 내밀고, 그들의 밥벌이에 살갑게 다가갈 때, 겨울 준비를 미처 못해서 아파하는 가족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줄 수 있는 가장, 그래서 밥벌이를 은밀하게 기뻐하며 건강하게 연장을 드는 이 세상 가장들을 더욱 더 많이 만드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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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