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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6.14 16:51:0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장정환

한전충북본부 홍보실장

그녀를 처음 본 것은 비탈을 지나 산모퉁이를 돌 무렵이었다, 어느 해 유월이었고 바람이 적당히 차가워 한껏 기분이 좋았다. 햇빛이 부풀어 오르면서 금빛가루가 흩날리며 쏟아졌다. 미끈한 다리, 가느다란 하얀 팔, 금방 감은 듯 물기 촉촉한 머릿결이 달콤한 향내를 풍겨왔다. 나는 자그마한 나무벤치에 앉아 그녀를 살폈다. 잠시 숨이 가빠왔다. 이제 갓 스물이 되었을까? 그녀의 고졸한 신비감, 싱싱한 관능, 건강한 생명력이 날 묘하게 달뜨게 했다.

오늘도 난 그녀를 찾아 언덕을 올랐다. 그녀는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살며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난 당당하고 싱그러운 그 자태를 보기 위해 일주일 내내 기다려온 것이다.

그녀는 언젠가 로테라고 이름 붙여준 매봉산 언저리의 상수리나무이다. 어느 아침녘 구룡산을 두어 시간 산책하고 땀을 식히려 잠시 벤치에 앉았다. 비온 후의 숲에 바람이 달려왔다. 그 때 눈앞에 들어온 아름다운 상수리나무. 늘씬하면서도 도도한 모습이었다. 아! 마치 환호하듯 끄떡끄떡 너울거리는 나뭇가지며 반짝반짝 조잘거리는 무수한 잎새들.

그때 난 목도했다. 바람과 햇빛과 나무가 어울려 재잘거리는 그 즐거운 장면을. 엽록소로 충만한 초록의 육체에 거칠면서도 부드럽게 휘감아 도는 바람의 유희, 금빛 가루의 햇살을 마구 뿌려대며 나무의 머릿결과 살갗을 하염없이 애무하는 그 눈부신 햇빛의 향연을. 그들은 마음껏 얘기하고 기뻐했으며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넘실거렸다. 생명의 숨결이 콸콸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껏 난 식물들을 무시했다. 가소롭게 보았다. 식물은 단지 인간이라는 영장류에게 필요한 소품쯤으로 여겼다. 식물들은 태곳적부터 땅에 발목이 잡혀있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생명일 뿐이라고 치부했고 인간의 허기를 메우는 음식이며 도구라고만 생각해 왔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오만했던가.

로테는 날 각성시켰다. 생명은 능동성이며 당당한 자유라고. 인간이라는 동물들이 진화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하찮게 사물화·수동화 되어가고 있는지 나무라며 뽐내는 듯 했다. 나무들은 고독하나 장구한 세월을 버텨낸 단단한 인내와 고고함이 있다. 그 뿌리들은 거의 무한을 향한 절대의지가 뻗어 있다. 계절마다 색채와 패션을 바꿀 줄 아는 애교스런 감각도 있다. 고향과 근원을 떠난 자의 비루한 방랑과 감상의 여린 향수병을 하소연 하지 않는다. 남을 먹이로 삼키는 야수성의 허기와 탐욕도 없다. 오히려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종속영양 생물체'인 나약한 동물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영원한 모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왔다. 기나긴 인간 역사의 깊고 아픈 기억을 옹이 속에 간직하면서도 묵묵히 지켜보기만 해왔다. 결코 모두에게 설교하여 교화하려 들거나 침략하거나 약탈하지도 않았다. 다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넉넉하게 안아줄 뿐이었다.

오늘 아침의 로테는 깊이 사색 하는 듯 짙은 초록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고요히 서 있었다. 로테를 볼 때마다 우주와 자연의 내밀한 이치가 얼마나 명징한지를 깨닫는다. 자연의 질서정연한 순환이 우주의 순리이듯 나와 로테 또한 다르지 않다. 똑같은 생명으로서의 대사과정을 통해 숨 쉬고 생장하고 소멸하는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오래전 순수를 잃은 나를 로테는 말간 눈으로 응시했다. 왜소해진 나에게 실팍한 생명력으로 일깨웠다. 쓸데없는 번민으로 주춤거리는 내게 반짝이는 이파리를 살랑대며 흔들었다.

내게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는 오늘도 자기를 바라보라고 보챘다.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삶의 비유를 찾아 다시 깨어나라고 재촉한다. 지금 뜨겁고 맹렬한 햇살이 너울거린다. 그녀의 수액 넘치는 푸르른 생동감이 벌써 그립다. 어느새 난 그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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