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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숟가락은 왜 그렇게 컸을까

배영동 교수 '한국 수저…' 논문
지금보다 5cm 길어…국자·주걱 겸용
젓가락은 조선 후기까지 대중화 안돼
한국인 '물기·따뜻한 음식' 선호 결과

  • 웹출고시간2010.07.12 18:57:4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편집자 주

적어도 삼국시대까지의 숟가락은 '저것으로 어떻게 밥을 먹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척 크다. 이와 관련, 대전보건전문대 배영동(박물관과) 교수가 '한국 수저의 음식문화적 특성과 의의' 논문을 내놓은 바 있다.
올 상반기 이전에 발표됐으나 한국 수저문화를 연구한 거의 유일한 논문이어서 오늘 학술란에 소개한다. 음성, 충주, 진천 등 충북출토 수저도 상당수 등장한다.

고려시대 숟가락으로, 지금 것보다 술잎이 날카롭고 그 길이가 길다. 술자루가 연미형(좌로부터 4~5번째)인 것도 보인다.

적어도 삼국시대까지의 숟가락은 '저것으로 어떻게 밥을 먹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척 크다. 이와 관련, 대전보건전문대 배영동(박물관과) 교수가 '한국 수저의 음식문화적 특성과 의의' 논문을 내놓은 바 있다.

올 상반기 이전에 발표됐으나 한국 수저문화를 연구한 거의 유일한 논문이어서 오늘 학술란에 소개한다. 음성, 충주, 진천 등 충북출토 수저도 상당수 등장한다. <편집자 주>

논문에 따르면 전국 발굴현장에서 출토된 각 시대의 우리나라 숟가락은 그 양식이 크게 7단계로 구분되고 있다.

그는 그 단계를 1기(선사~삼국시대), 2기(통일신라시대), 3기(통일신라~고려초기·음성 대소출토), 4기(고려중기·충주 금가출토), 5기(고려중기~조선전기·진천 초평출토), 6기(조선후기), 7기(최근세) 등으로 분류했다.

이중 1기, 그중에도 청동기~삼국시대의 숟가락은 그 크기가 지금이 것보다 무척 큰 모습을 하고 있다.

이중 청동기에 해당하는, BC 6~7세기의 편년값을 갖고 있는 초도(북한 나진) 출토 숟가락은 술잎 길이 11㎝, 술잎 너비 5.7㎝, 전체길이 28㎝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의 숟가락은 대략 술잎 길이 6㎝, 술잎 너비 4㎝, 전체길이 23㎝ 안팎 정도가 되고 있다. 따라서 '저것으로 어떻게 밥을 먹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편에 속하고 있다.

배 교수는 숟가락 중 무엇인가 떠먹는 부분은 숟가락 '술잎', 손으로 쥐는 부분은 '술자루'라고 칭했다. 이는 입안에 넣는 것은 '한술' '두술'로 칭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배교수는 이처럼 고대 숟가락이 큰 것에 대해 "삼국시대까지는 숟가락, 주걱, 국자의 기능이 분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즉 커다란 숟가락으로 국물도 뜨고 밥도 푼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그는 숟가락 중 술잎의 양식 변화도 세밀히 관찰했다. 그 결과, 둥근 원형-사각에 가까운 원형- 뾰족한 원형-뾰족한 타원형-타원형 직선 술자루 모습으로 변화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지금의 젓가락은 숟가락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대중화했으나, 적어도 조선 후기까지는 그 쓰임새가 매우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배 교수는 발굴현장에서 수습된 숟가락과 젓가락을 분류, <표>에 보이는 것과 같은 데이터값을 얻었다.

그는 이같은 값에 대해 △삼국시대에는 젓가락 사용량이 미약했고 △고려 때부터 어느정도 대중화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러나 숟가락과 쌍으로 발견되지 않는 것에서 보듯, 밥상에서의 위계는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배 교수는 젓가락의 밥상 위계를 알 수 있는 문화적 증거들로 식사시 숟가락을 가장 먼저 사용하는 점, 젓가락은 사용하지 않으면 밥상에 내려놓는 점, 각설이도 숟가락만 가지고 다닌 점 등을 제시했다.

자료에 의하면 세계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경우 40%, 젓가락을 사용하는 경우 30%, 나머지는 포크나 나이프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 민족만이 유일하게 '숟가락을 위주로 해서 젓가락을 병용'하고 있다.

배 교수는 그 이유로 한국인들의 습성(물기) 음식선호, 대식 전통, 속식(빨리 먹기) 습관, 따스한 음식 선호 등을 거론했다. 한편 수저질 비율을 조사한 결과 17대 1로 오른손잡이가 절대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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