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의 그림이야기 - 한국의 로트렉 손상기

한국의 로트렉 손상기

2026.09.16 15:27:53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지난번에는 한국의 로트렉(1864∼1901)으로 구본웅(1906∼1953)을 소개했는데, 이번에도 또 한 명의 '한국의 로트렉'이라 불리는 손상기(1949∼1988)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손상기는 세 살 무렵 척추만곡증을 앓았다. 이로 인해 서른아홉에 이 세상과 작별하기까지 힘겹게 생활하며 그림을 그렸다. 경제적으로는 로트렉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지만, 어린 시절 사고와 병으로 단신이 됐고 밤 문화와 어두운 밤거리를 그린 작품 스타일이 비슷해 사람들은 그를 '한국의 로트렉'이라 부른다.

손상기는 여수에서 태어나 여수상업고등학교 다닐 때 각종 미술대회에서 입상하며 재능을 인정받는다. 1973년 전라북도 익산의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필자도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출신이라 그런지 출신이 같은 그에게서 친근감을 느껴진다. 필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필자가 교직 생활과 작업을 병행한 데 비해 그는 힘겨운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갔다는 것이다. 필자가 온실 속 화초였다면 손상기는 들판의 야생화였다.

원광대학교 미술교육과 재학 시절, 그는 자신의 세계 확립에 몰입했다. 가난한 환경과 무서운 집념은 대학 생활 동안 건강을 돌볼 틈을 주지 않았다. 밤새워 작업하고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아 한때 폐결핵을 앓기도 했다. 하지만 몸이 망가져 갈수록 예술 정신과 의지는 더욱 빛났다.

대학 시절 그는 숙명적인 고독과 정서적이며 설화적인 작품들로 억누르고 감추어진 자아를 주로 표현했다.

손상기는 그림을 통해 상처 난 영혼을 위로받았다. 온갖 소외와 절망 속에서 그림은 그에게 빛이자 구원이었으며 상처 난 꿈을 실현하려는 욕망이자 상실에 대한 극복이었다.

1979년 대학 졸업 후 익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북아현동 골목의 허름한 건물 지하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몇몇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새로운 도약을 위해 작업에 매진했고, 1981년 동덕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81년 이후 매년 개인전을 개최해 투병하기 전까지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다. 1983년에는 미술평론가들이 꼽은 '83년 문제작가'로 선정되며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LA현대화랑 초대 구상전, 샘터화랑 초대 개인전 등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며 입지를 굳혔다.

손상기를 일찌감치 알아본 이는 선배 화가들이었다. 샘터화랑에 따르면 "김기창(1913∼2001), 권옥연(1923∼2011), 전혁림(1916∼2010) 등 원로 작가들이 앞다투어 작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통영의 짙푸른 바다를 그렸던 전혁림은 "시커먼 그림이 빛을 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드문 작품이다"라며 열광했고, 미술과 교수로는 드물게 경원대학교 총장을 지낸 윤형근(1928∼2007)은 "음악은 슬퍼야 하고 미술은 소박해야 하는데, 박수근 이후 가장 소박한 작가가 손상기다"라고 평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인간의 비정함과 소외, 찢긴 삶에 대한 조형화로, 인간 회복을 갈망하는 절규였다. 민중의 현실과 심리를 잘 투영하며 삶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내면의 복합적 갈등과 심리 묘사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손상기가 남긴 그림들은 그가 지나온 삶의 궤적이기도 하다. 몸집보다 큰 봇짐을 머리에 이고, 그 옷자락을 잡아끄는 판자촌 아이가 그려진 '나의 어머니'라는 작품에는 "무겁고 무겁다. 인생의 짐, 아이의 짐, 마음의 짐이 모두 무겁고 고단하다. 그들을 도우소서"라고 적혀 있다.

손상기는 아현동 굴레방다리 옆에서 살며, 개발 중인 서울을 화폭에 담았다. "장애물이 많은 도시, 나에게 서울은 벅차다. 육교, 지하도, 넓은 건널목, 소음,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 밀리는 사람들의 표정 없는 얼굴들 모두가..."라고 썼다. 밑동이 잘린 '자라지 않는 나무', 허리가 꺾인 채 화병에서 말라가는 '시들지 않는 꽃' 같은 자전적 그림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을 울리고 있다.

1985년 폐울혈성 심부전증 진단을 받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1988년 부인과 두 딸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이 39세였다. 지금 살았다면 77세로 왕성하게 작품세계를 펼칠 나이인데 많이 아쉽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30대에 머무른 듯 영원한 청춘 같다. 남아있는 그림들이 그를 전설로 만들었다. 

손상기를 보면 로트렉뿐 아니라, 치열하게 살다 요절한 고흐(1853∼1890), 나혜석(1896∼1948), 이중섭(1916∼1956), 구본웅(1906∼1953), 권진규(1922∼1973), 박길웅(1941∼1977) 등이 떠오른다. 모두 시대를 앞서 살았기에 부적응자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미술가들이다.

'작품은 작가가 가난해야 나온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꿈같은 얘기 같지만 전업작가들이 빵 걱정 안 하고 마음껏 그림만 그릴 수 있는 시대가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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