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은 언제 시험받는가

2026.09.13 15:59:04

임가영

에세이스트

세상이 온통 소란하다. 정치적 이념으로 갈라진 말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쏟아진다. 온 국민이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시대에 나까지 소중한 지면을 정치 이야기로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용혜인 의원을 둘러싼 논란만큼은 침묵하기 어려웠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까지 다루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니 오늘은 용 의원 하나만 패기로 한다.

지명 이후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 겸직, 기본소득당 국고보조금, 배우자의 당직과 급여 등 숱한 의혹이 제기됐다. 나 역시 속으로 부글부글 끓던 중 용 의원이 발표한 장문의 기자회견문을 읽고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용 의원은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은 법률이 허용하며 비례대표에게만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개별 의혹에도 구체적으로 반박했다. 언론이 반론을 충분히 다루지 않고 '의혹'과 '논란'이라는 낙인을 찍었다는 비판도 반복했다.

일부 사실관계는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언론이 의혹을 제기했다면 반론도 충실히 보도해야 한다. 그러나 반론이 실렸다고 대중이 반드시 설득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기자로 오래 일했다. 당사자의 해명이 새로운 사실을 밝히고 논란의 핵심에 답한다면 후속 보도로 이어진다. 반대로 본질적인 질문에 닿지 못하면 설명이 길어질수록 의문은 커진다. 언론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답변이 시민들의 질문에 제대로 닿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내가 가장 유감스러웠던 대목은 따로 있다. 용 의원은 장관직을 수락한 이유를 설명하며 "내 딸은 돌아오지 못해도 대한민국의 다른 딸들은 지키고 싶다"던 교제살인사건 유가족과 "워킹맘은 죄인인가"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30대 워킹맘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정치인의 책무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그 고통을 불러오는 것이 적절했는지는 묻고 싶다. 그들의 상처가 의원직과 장관직을 함께 유지하려는 선택의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년 가까이 일과 양육을 병행한 워킹맘으로서 더욱 유감이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여성이나 워킹맘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 아니다. 사람들이 묻는 것은 불법이냐 합법이냐를 넘어, 과거 다른 정치권의 보조금 운용에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던 사람이 자신의 이해관계 앞에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는가이다.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는 지난 2년여 동안 공직에서 비서관으로 일하며 내 안에 두 사람과 자주 마주했다. 한 사람은 법과 절차를 먼저 확인하는 공직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설명만으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지를 묻는 기자였다. 선후배 기자들이 어떤 사안을 두고 "이건 정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어오면 기자로서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공직자로서는 법과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로 방어해야 했다. 두 역할의 기준이 충돌할 때마다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붙잡았던 것은 '합법과 납득 사이'였다.

법과 절차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국민의 눈높이에서도 이해될 수 있는가를 묻고 또 물었다.

삶과 생각은 세월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 앞에 서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남에게 요구했던 기준을 스스로에게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언론의 왜곡을 비판하기 전에 국민이 왜 분노하는지부터 정확히 읽어야 한다. 그게 먼저다.

원칙은 남을 향해 말할 때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때 비로소 시험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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