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축문화에 K-컬처를 입히다7. 청주 수동성당·성공회 성당,익산 나바위성당,진안 어은공소

지발위 공동주제 심층보도
청주의 숨결을 따라, 수동성당과 성공회 성당이 빚어낸 공간의 미학
익산 나바위성당, 진안 어은공소 등으로 이어지며 종교건축 백미 자랑

2026.09.14 17:06:49

[충북일보] 도심의 시간은 번화가의 소음 속에 가려지지만 오래된 건축물은 그 소음을 뚫고 시대를 증언한다. 청주 도심, 골목 끝에서 마주하는 수동성당과 성공회 성당은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청주의 근현대사와 그 안에서 살아온 이들의 사유가 축적된 거대한 공간 기록물이다. 자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그 일부로 녹아든 성당의 모습에서 우리는 한국적 공간문화의 품격과 깊은 인문학적 토양을 발견한다. 이러한 성당 건축양식은 전북 익산의 나바위성당, 진안 어은공소, 전주 전동성당 등으로 이어지며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건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붉은 벽돌에 새겨진 6·25의 상흔, 청주 수동성당

상당산성 지맥이 도심 구릉으로 잦아드는 지점에 자리한 수동성당은 1950년대 후반의 외형을 넘어 청주의 영적·역사적 무게중심을 잡는다. 수동성당은 6·25전쟁 직후 황폐화된 충북 지역의 사회·경제적 참상과 깊게 맞닿아 있다. 당시 충주교구와 청주 지역은 피란민과 전쟁 고아가 넘쳐나던 구호의 현장이었다. 메리놀 외방선교회 등 해외 선교사들의 지원과 지역민의 피땀 어린 노동력이 결합해 세워진 이 성당은 공동체의 무너진 정신을 복원하는 최후의 보루였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마주하는 정면은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붉은 벽돌의 질감으로 다가온다. 당시 극심한 물자 부족 속에서 최소한의 자재로 구조적 견고함을 확보해야 했던 시대적 고뇌가 담겨 있다. 내부로 들어서면 고딕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아치형 창호들이 줄지어 서 있다. 창호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제대 위에서 흩어지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재료 본연의 물성이 빛과 만나 만드는 공간의 밀도는 현대 건축이 잃어버린 사색의 시간을 돌려준다.
◇한옥과 바실리카의 치열한 타협, 청주 성공회 성당

청주 성공회 성당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외래 종교가 조선의 토양에 연착륙한 과정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료다. 이곳은 외래 종교가 한국적 지리와 유기적으로 결합한 방식을 시각화한다.

성공회 선교사들은 조선의 건축 어법을 존중하는 토착화 정책을 펼쳤고 성공회 성당은 서양의 바실리카 양식 위에 한옥의 골격을 이식했다. 조선의 전통 목수들과 서양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완성한 목조 가구식 구조와 바실리카 양식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낮은 처마선은 주변 주거지와 비례를 맞추며 마을 풍경 속에 스며든다.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주민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고자 했던 성공회 공동체의 실천 윤리가 담겨 있다. 정갈한 마당과 내부를 잇는 낮은 문턱은 방문객에게 공간 안팎을 오가는 여유를 선사한다. 처마 밑 동선은 걷는 이의 속도를 늦추고 주변 자연과 대화하게 만든다. 이는 건축물 안팎을 거닐며 자신을 반추하는 한국 고유의 공간 철학을 계승한 것이다.

◇공간, 사람의 삶과 사상을 담아내는 그릇

청주 수동성당과 성공회 성당은 청주의 지리적 특색과 근현대사의 아픔, 공동체의 염원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들 건축물은 과거의 유물을 박제해두는 곳이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느림과 성찰의 가치를 일깨우는 살아있는 문화 자산이다. 도시의 빠른 속도감 속에서 두 성당이 지키는 고요함은 우리 건축이 지향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단순히 외형적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의 삶과 사상을 공간에 조화시키려는 질문이 벽돌 하나, 목재 한 조각에 담겨 있다.
◇안식이 필요한 모두에게 열려있는 진안 어은공소

진안읍을 지나 장수방향으로 달리다 오천초등학교 부근에서 골짜기를 따라 가다가 다다른 마을에 자리잡은 어은공소.

공소는 본당보다 작은 교회로 신부가 상주하지않은 예배소나 그 구역을 일으키는 말이다.

한 여름 폭염에도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과 함께 사방이 트인 출입문에서 부는 시원함, 그리고 성모마리아상 뒤로 펼쳐진 공소는 고즈넉한 한옥 그 자태였다. 도로변에서 3㎞나 골짜기로 들어갔으니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소신을 지키고자 했는지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1866년 병인박해당시 서울과 경기도, 충청지역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진안의 골짜기인 이곳에 교우촌을 형성하고 1888년 전주본당(현 전동성당)에서 관할하는 공소가 됐다. 이후 신도가 늘어나자 본당으로 승격됐고 1909년 진안 최초의 성당(공소)을 건축했다. 지붕은 돌 너와로 얹고 정면 6칸, 측면 4칸의 한옥 건물이다. 우리나라 초기 한옥 형태의 성당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축물로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에 국가등록문화유산(옛 국가등록문화재 28호)으로 지정됐다.

내부로 들어서면 70~80년 교실을 연상하듯 하면서도 일상에서 접했던 교회나 성당과는 다른 한옥식 구조이면서도 서로 절충한 구조가 더욱 눈에 띈다. 걸을 때마다 고요함을 깨는 나무 마루의 삐거덕거리는 소리는 세월의 깊이를 실감하게 한다. 의자와 제대도 오래된 성당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고조시켜 준다.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있는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위치한 나바위성당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서품과 귀국을 기념하는 사적이다.

1897년 본당을 설립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베르모렐(장약슬 요셉) 신부가 1906년 신축공사를 시작하여 1907년에 완공했다. 설계는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아네 신부가,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본당의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한식 기와를 얹었고 지붕 아래로 팔각 채광창을 뒀다. 양 측면 개방된 회랑에는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돼 있어 한국 전통 목조건축과 서양식 성당 건축이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때 화산성당으로 불리다 1989년 부터 본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성당 뒤쪽 너른 잔디밭 광장에 가면 갓을 쓴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도포를 걸치고 한쪽 손을 든 성인의 모습이 바티칸에서 공개된 성상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바로 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야트막한 산이 나온다. 그 산마루에 너른 평야를 가르는 금강의 그림 같은 풍광을 둘러볼 수 있는 정자 '망금정'이 있다. 그 옆으로 25세 나이로 순교한 김 신부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공동취재단

충북일보:김용수 사진부 국장, 박소담 사회부 기자, 전은빈 문화부 기자
전북도민일보:이방희 디지털뉴스국장, 김상기 문화교육부 차장, 최진영 편집부 차장, 한신 편집부 차장
자문위원=백승기 건축사·도시공학박사·원광대학교 겸임교수, 박상일 청주대학교 명예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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