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39명. 지난달 한 국민청원에 동의한 사람의 숫자다. 청원에 필요한 동의자는 5만 명이었지만, 끝내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청원이 요구한 것은 국가 희귀질환 관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국립희귀질환센터'의 설치와 「희귀질환관리법」 개정이었다. 청원인은 희귀질환 환자들이 진단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전국의 병원을 찾아다니는 현실을 호소했다. 특히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들은 희귀질환을 잘 아는 의료진과 의료기관을 만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도 희귀질환을 위한 국가 관리체계는 있다. 질병관리청은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을 지정하고 의료비 지원사업을 운영하며, 환자 등록과 통계 구축 등을 통해 관리체계를 보완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갖춰져 있다고 해서 환자들이 의료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까지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와 가족이 질환의 특성과 주의사항을 의료진에게 직접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특히 응급상황에서는 질환에 대한 이해 부족이 환자의 안전과 직결될 수 있다.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전문적인 진료를 받기 위해 몇 시간씩 이동하거나, 필요한 진료과가 있는 병원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희귀질환은 질환의 종류가 매우 많고 각각의 환자 수가 적다는 특성 때문에 의료진이 충분한 진료 경험을 쌓기 어렵다. 한 의료기관에서 특정 희귀질환 환자를 지속적으로 진료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환자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적절한 진료를 받기 어려울 수 있고, 결국 전문적인 진료를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모든 환자가 진료를 받을 때마다 수도권이나 특정 전문기관을 찾아야 한다면 환자와 가족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희귀질환 환자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치료받아야 하는가.' 이번 청원이 던진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 닿아 있다. 특정 기관을 새로 설치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희귀질환을 전문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기관과 환자가 실제로 생활하는 지역의 의료기관이 연결되는 것이다. 진단과 치료뿐 아니라 응급상황에서도 환자의 질환 정보와 필요한 의료지침이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어디에 센터를 세우느냐를 넘어, 환자가 거주 지역 때문에 적절한 진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국가의 희귀질환 관리체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17,639명. 청원이라는 제도 안에서는 실패한 숫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숫자를 단순히 '동의가 부족했다'는 결과로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질문까지 놓치게 된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희귀'라는 이름을 얻었다. 희귀하다는 것은 환자의 수가 적다는 뜻이지, 그 사람의 생명과 삶의 가치가 작다는 뜻은 아니다. 17,639명이 남긴 질문에 이제는 우리 사회가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