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인상주의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로트렉(1864~1901)은 어렸을 때부터 뼈가 극히 약해 14살에 의자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다리의 성장이 평생 멈춰 버리는 장애를 갖게 된다. 그러나 로트렉은 이 장애를 극복하고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가 된다. 우리나라에도 로트렉과 비슷한 장애와 삶을 살아 '한국의 로트렉'이라고 불리우는 화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구본웅(1906~1953)이다.
구본웅은 서울의 부유한 가정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판사를 경영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구자혁(1885~1959)이다. 구본웅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상산김씨1884~1907)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동네 젖동냥으로 컸는데, 세 살 때 유모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척추 장애인이 되었다고 한다.
구본웅은 경신고보 다닐 때 종로 YMCA에서 본격적으로 그림과 조각을 배운다.
그의 조각을 가르친 스승은 김복진(1901~1940)이고 그림 스승은 고희동(1886~1965)이었다. 김복진은 서양 조각을 한국 화단에 처음으로 도입한 개척자다. 고희동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처럼 구본웅은 조각과 그림을 당대 최고의 대가들에게 배우는 복을 누린다. 21살 때 선전(鮮展)에 조각 '얼굴습작'을 출품하여 특선을 한다. 그러나 구본웅은 체력이 약해 조각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유학 가 서양화를 공부한다.
구본웅의 친한 친구 중에 소설 '날개'를 쓴 이상(김해경1910~1937)이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이들은 금방 친해진다. 부잣집 아들 구본웅은 친구인 '김해경'에게 미술도구 상자를 선물했는데, 이에 감동한 김해경은 자신의 이름을 '오얏나무 상자'라는 뜻의 '이상(李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둘 다 매우 똑똑하여 '수재'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상은 명문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진학하지만, 구본웅은 '신체적 결함'을 이유로 가고 싶었던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로의 입학을 거부당해 좌절을 겪는다.
키가 큰 이상과 척추 장애로 키가 작은 구본웅은 늘 같이 붙어다녔다고 한다.
삽화를 많이 그린 이승만(1903~1975)은 이런 모습을 특이하게 봤는지 이들을 모델로 해 스케치한다.
텁수룩한 머리와 창백한 얼굴에 수염이 뻗친 이상과 꼽추인 구본웅이 함께 거리를 거닐면 곡마단이 온 줄 알고 아이들이 뒤를 따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당시 이상과 구본웅 외에도 시와 그림, 소설에 두루 능한 괴짜들이 많았고 잘 어울렸다. 백석과 정현웅, 김기림과 이여성, 이태준과 김용준, 구상과 이중섭 등이었는데 이들은 서로 우정을 나누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암흑기에서 예술의 작은 불씨를 지켜낸다.
구본웅은 야수파, 혹은 입체파 화풍의 모던 아트를 국내 화단에 처음 소개한 화가다. 그의 그림은 강렬하다. 고흐나 이중섭과 유사한 억센 붓놀림의 개성이 느껴진다.
구본웅의 대표작 중 친구 이상을 그린 '우인상(友人像)'이라는 초상화가 있다.
파이프를 물고 세상을 직시하는 듯한 모습, 삐딱하게 쓴 모자와 날카로운 눈매가 퍽 반항적이다. 괴팍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얼굴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붓놀림이 강렬하고 의도적으로 지저분하게 그린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 청년의 초상을 표현한 것 같다.
한국 야수파의 대표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어머니를 일찍 여윈 구본웅은 새어머니인 변동숙(1890~1974)의 손에서 자랐다. 변동숙의 여동생 중에 26살 어린 변동림(1916~2004)이라는 신여성이 있었다. 구본웅은 나이 어린 이모 변동림을 친구 이상에게 소개한다. 둘은 결혼했으나 이상은 폐결핵으로 27살에 요절하고 만다. 홀로된 변동림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향안으로 이름을 바꾸고 애 딸린 홀애비 김환기(1913~1974)와 재혼한다. 김향안은 김환기를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만든다. 이 얘기는 '변동림과 김향안(2023.11.16.)이라는 제목으로 쓴 적이 있다.
평소 몸이 쇠약했던 구본웅은 6.25 전쟁중이던 1952년 서울 종로구 누하동 자택에서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때 나이 47세으로 사인은 "영양실조에 의한 노쇠"였다고 한다.
구본웅의 작품들은 한국전쟁 시 모두 불타버리고 만다. 현재 남아있는 작품이 고작 10점이 안 된다.
구본웅의 자식들은 선친의 작품을 찾으려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식들이 아버지의 그림을 한 점도 안 갖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라 표현할 만큼 안타까운 일이다. 박수근(1914~1965)의 자식들도 가지고 있는 아버지 그림이 없어 '박수근미술관'에 한점도 걸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필자는 괜찮은 그림이 나올 때마다 자식들에게 선물하고 있고 많은 그림들이 작업실에 있어 위와 같은 비극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구본웅은 아내 강임(1970년 사망) 사이에서 3남 5녀를 두었다.
셋째딸인 구근모는 강재수 사이에서 1남 3녀를 낳았는데 둘째 딸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발레리나 강수진(1967~ )이다. 강수진은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활동한 국제적인 발레리나이다. 강수진 말고도 첫째 딸 강여진과 셋째 딸 강혜진은 하프를 전공한 클래식 연주자다. 이런 손녀들의 예술활동은 외할아버지 구본웅의 예술혼이 이어진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