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의 그림 이야기 – 한국의 로트렉 구본웅

2026.09.07 14:57:15

이상과 구본웅 - 이승만 작품.

탈인상주의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로트렉(1864~1901)은 어렸을 때부터 뼈가 극히 약해 14살에 의자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다리의 성장이 평생 멈춰 버리는 장애를 갖게 된다. 그러나 로트렉은 이 장애를 극복하고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가 된다. 우리나라에도 로트렉과 비슷한 장애와 삶을 살아 '한국의 로트렉'이라고 불리우는 화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구본웅(1906~1953)이다.

구본웅은 서울의 부유한 가정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판사를 경영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구자혁(1885~1959)이다. 구본웅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상산김씨1884~1907)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동네 젖동냥으로 컸는데, 세 살 때 유모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척추 장애인이 되었다고 한다.

구본웅은 경신고보 다닐 때 종로 YMCA에서 본격적으로 그림과 조각을 배운다.

그의 조각을 가르친 스승은 김복진(1901~1940)이고 그림 스승은 고희동(1886~1965)이었다. 김복진은 서양 조각을 한국 화단에 처음으로 도입한 개척자다. 고희동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처럼 구본웅은 조각과 그림을 당대 최고의 대가들에게 배우는 복을 누린다. 21살 때 선전(鮮展)에 조각 '얼굴습작'을 출품하여 특선을 한다. 그러나 구본웅은 체력이 약해 조각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유학 가 서양화를 공부한다.

구본웅의 친한 친구 중에 소설 '날개'를 쓴 이상(김해경1910~1937)이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이들은 금방 친해진다. 부잣집 아들 구본웅은 친구인 '김해경'에게 미술도구 상자를 선물했는데, 이에 감동한 김해경은 자신의 이름을 '오얏나무 상자'라는 뜻의 '이상(李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둘 다 매우 똑똑하여 '수재'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상은 명문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진학하지만, 구본웅은 '신체적 결함'을 이유로 가고 싶었던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로의 입학을 거부당해 좌절을 겪는다.

키가 큰 이상과 척추 장애로 키가 작은 구본웅은 늘 같이 붙어다녔다고 한다.

삽화를 많이 그린 이승만(1903~1975)은 이런 모습을 특이하게 봤는지 이들을 모델로 해 스케치한다.

텁수룩한 머리와 창백한 얼굴에 수염이 뻗친 이상과 꼽추인 구본웅이 함께 거리를 거닐면 곡마단이 온 줄 알고 아이들이 뒤를 따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당시 이상과 구본웅 외에도 시와 그림, 소설에 두루 능한 괴짜들이 많았고 잘 어울렸다. 백석과 정현웅, 김기림과 이여성, 이태준과 김용준, 구상과 이중섭 등이었는데 이들은 서로 우정을 나누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암흑기에서 예술의 작은 불씨를 지켜낸다.

우인상-구본웅 작품.

구본웅은 야수파, 혹은 입체파 화풍의 모던 아트를 국내 화단에 처음 소개한 화가다. 그의 그림은 강렬하다. 고흐나 이중섭과 유사한 억센 붓놀림의 개성이 느껴진다.

구본웅의 대표작 중 친구 이상을 그린 '우인상(友人像)'이라는 초상화가 있다.

파이프를 물고 세상을 직시하는 듯한 모습, 삐딱하게 쓴 모자와 날카로운 눈매가 퍽 반항적이다. 괴팍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얼굴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붓놀림이 강렬하고 의도적으로 지저분하게 그린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 청년의 초상을 표현한 것 같다.

한국 야수파의 대표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어머니를 일찍 여윈 구본웅은 새어머니인 변동숙(1890~1974)의 손에서 자랐다. 변동숙의 여동생 중에 26살 어린 변동림(1916~2004)이라는 신여성이 있었다. 구본웅은 나이 어린 이모 변동림을 친구 이상에게 소개한다. 둘은 결혼했으나 이상은 폐결핵으로 27살에 요절하고 만다. 홀로된 변동림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향안으로 이름을 바꾸고 애 딸린 홀애비 김환기(1913~1974)와 재혼한다. 김향안은 김환기를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만든다. 이 얘기는 '변동림과 김향안(2023.11.16.)이라는 제목으로 쓴 적이 있다.

평소 몸이 쇠약했던 구본웅은 6.25 전쟁중이던 1952년 서울 종로구 누하동 자택에서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때 나이 47세으로 사인은 "영양실조에 의한 노쇠"였다고 한다.

구본웅의 작품들은 한국전쟁 시 모두 불타버리고 만다. 현재 남아있는 작품이 고작 10점이 안 된다.

구본웅의 자식들은 선친의 작품을 찾으려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식들이 아버지의 그림을 한 점도 안 갖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라 표현할 만큼 안타까운 일이다. 박수근(1914~1965)의 자식들도 가지고 있는 아버지 그림이 없어 '박수근미술관'에 한점도 걸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필자는 괜찮은 그림이 나올 때마다 자식들에게 선물하고 있고 많은 그림들이 작업실에 있어 위와 같은 비극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구본웅은 아내 강임(1970년 사망) 사이에서 3남 5녀를 두었다.

셋째딸인 구근모는 강재수 사이에서 1남 3녀를 낳았는데 둘째 딸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발레리나 강수진(1967~ )이다. 강수진은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활동한 국제적인 발레리나이다. 강수진 말고도 첫째 딸 강여진과 셋째 딸 강혜진은 하프를 전공한 클래식 연주자다. 이런 손녀들의 예술활동은 외할아버지 구본웅의 예술혼이 이어진 것이 아닐까.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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