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아주 아늑하고 동그란 우주 하나가 숨어 있었다. '자궁'이라는 이름의 작고 따뜻한 집, 그 오롯하고 성스러운 공간 속에서 아들 셋과 딸 넷, 모두 일곱이라는 아련하고 귀한 생명이 열 달 동안 저마다의 꿈을 꾸었다. 먹는 것 하나, 말 한마디까지 조심하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가다듬었던 그 시간은 내 삶에서 가장 기꺼운 기다림의 나날이었다.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던 끝에 마침내 둥근 집의 문이 열리고, 세상 빛을 마주할 날이 찾아왔다. 하지만 너무도 원통하게 나는 두 아이를 내 품에서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차가운 가슴속 깊이 묻어야만 했다.
첫째는 시골의 작은 산부인과에서, 둘째는 바로 이듬해 낯선 타향의 병원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로 황망하게 내 곁을 떠나갔다. 우리 부부의 두 아이는 눈앞에서 차가운 어둠 속으로 가만히 굴러 들어가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환하게 펼쳐보았어야 할 10대의 푸르름도, 20대의 찬란한 청춘도 경험해보지 못한 채 저 아득한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 것이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가슴은 형체도 없이 부서져 매일 밤 피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주저앉아 슬픔의 늪에 빠져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미라는 이름의 무게를 다시 짊어지고 일어서야 했다.
세 번째부터 여섯 번째 공은 공장 지대의 망치 소리와 거친 기계음이 끊이지 않던 공사현장의 숨소리를 태교로 거친 아이들이었다. 그 팍팍하고 고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세상 밖으로 나와 준 아이들은 참으로 대견하게 잘 자라주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로 찾아온 막내 역시 마음자리만큼은 비단실처럼 섬세하고 부드러운 아이로 자라났다. 녀석은 카메라 렌즈 너머로 세상을 정성껏 담아내는 사진과 설치 미술로 사람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갈 유연한 여유를 선물하는 어엿한 예술가가 되었다.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굽이굽이 가시밭길이요 다사다난한 자갈밭이었지만, 자식이라는 둥근 공을 품고 키워낸 그 오랜 세월은 신기하게도 힘든 줄을 모르고 흘러왔다.
가슴으로 묻은 두 아들의 자리는 문득문득 가슴 시리도록 아리고 애통하지만, 지금도 부지런히 세상을 향해 모나지 않게 굴러가는 다섯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이내 따스하고 든든해져 온다.
지금, 이 순간도 내 다섯 공은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부지런히 세상을 향해 굴러가는 중이다. 살아가다 가끔 거친 장애물이나 뾰족한 돌부리가 나타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지혜롭게 피해 갈 줄을 안다. 허세나 탐욕으로 헛되어 위로 솟구쳐 튀어 오르지 않으니, 어딘가에 부딪혀 모서리가 깎이거나 상처 입을 일도 없을 것이다. 척박하고 모난 세상이라 할지라도, 내 아이들은 언제나 모나지 않은 온화한 공이 되어 저마다의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둥글게, 또 부지런히 살아갈 것을 믿는다.
아이들이 그려내는 그 동그란 궤적은 바로 내 삶이 남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