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생산지 따로, 소비지 따로"…장거리 송전 구조 바꿔야

기획 | 주민 동의 없는 초고압 송전선로 갈등 ③
충남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처장 인터뷰
충남 15개 시·군 중 14곳 선로 대상…"지역 생산·소비 잇는 '에너지 지산지소' 필요"

2026.09.06 15:28:04

편집자주

반도체 산업 확대와 에너지 전환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송전망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국가 기반시설이지만 송전선이 지나는 농촌에서는 환경·재산권·건강권 침해 등을 우려하는 주민 반발이 거세다. 특히 사업 초기 주민 참여와 정보 공개가 충분했는지를 놓고 정부·한국전력과 지역 주민의 시각차가 크다. 충북일보·진안신문·주간함양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주민 동의 없는 초고압 송전선로 갈등, 지역 언론이 해법을 묻다'를 공동 취재했다. 영동·진안·함양의 갈등 현장에서 국내 선행 사례와 독일의 주민참여형 전력망 구축 과정까지 살펴보고, 주민과 지역을 희생시키지 않는 전력망 구축의 해법을 7차례에 걸쳐 모색한다.

<글 싣는 순서>

① 영동·진안·함양, 왜 송전선과 싸우나

② 왜 송전선 갈등은 반복되는가

③ 먼저 겪은 당진이 말하는 것

④ 독일은 무엇이 달랐나

⑤ 주민을 '설득 대상' 아닌 '정책의 주체'로

⑥ 송전선은 들어왔지만, 마을은 떠나지 않았다

⑦ 지역언론이 독일에서 찾은 답

충남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처장이 송전선로 갈등의 원인과 전력 생산·소비 구조 개선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충북일보]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을 분리해서 장거리 송전망을 구축하는 구조가 계속되는 한 사회적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충남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처장이 바라본 송전선 갈등의 출발점은 '노선'이 아니었다. 전력을 어디에서 생산하고 어디에서 소비하느냐의 문제였다.

충남은 대한민국 전력 공급의 핵심 지역이다. 전국 석탄화력발전 설비의 절반가량이 집중돼 있고 당진·태안·보령·서천에서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한 전력 상당량은 수도권으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발전에 따른 환경 부담과 고압 송전탑·송전선로로 인한 피해는 지역이 감당해왔다. 반면 전력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산업과 그에 따른 경제적 편익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비판도 이어져 왔다.

최근 충남의 송전망 갈등은 새로운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호남 등에서 생산한 전력을 대규모 전력 수요가 예상되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산업단지로 보내기 위한 송전망이 충남을 관통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충남 당진지역에 대규모 발전시설과 고압 송전선로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충남은 국내 대표적인 전력 생산지역으로,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 상당량이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 등 외부 지역으로 공급되고 있다.

ⓒ공동취재단
◇ 충남 14개 시·군 송전선로 영향권

정부가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용인 반도체산단에서 10GW 이상의 대규모 전력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방안이 담겼다. 초기에는 산단 내 3GW 규모 발전소를 활용하고 중장기적으로 호남권·동해안의 발전력을 수송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충남지역 시민사회가 파악하고 있는 신규 345kV 송전선로는 △신계룡~신정읍 △신계룡~북천안 △신계룡~신임실 △새만금~신서산 △북천안~신기흥 △군산~북천안 △신탕정~신판교 △신중부~신용인 △새만금~청양 △청양~고덕 등 10개 노선이다.

충남 15개 시·군 가운데 태안을 제외한 14개 시·군이 잠정적인 선로 구역에 포함됐다.

이에 충남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등은 지난해 11월 '충남 송전탑 백지화 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대응에 나섰다. 출범 당시에는 호남~수도권 송전선로 5개 노선으로 충남 13개 시·군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파악했지만 이후 추가 노선이 가시화하면서 송전선로 문제는 충남 대부분 지역으로 확대됐다.

지역의 반발에는 오랜 발전지역의 경험이 깔려 있다.

유 처장에 따르면 충남의 전력자급률은 200%를 웃돌며 태안은 자체 전력소비량에 비해 발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태안에는 발전설비용량 6004.5MW 규모의 태안발전본부가 자리 잡고 있다. 인구가 적고 대규모 전력소비 산업시설이 많지 않아 생산된 전력 상당량이 수도권 등 외부로 공급된다.

유 처장은 "충남에서는 그동안 막대한 환경 피해를 감수하면서 전력을 생산해왔다"며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 상당량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가는 동안 전력 사용에 따른 편리함과 경제적 편익은 수도권이 누려왔다"고 말했다.

당진지역 농경지와 주거지 주변으로 대규모 고압 송전선로가 지나고 있다. 사진 뒤편으로 당진화력발전소가 보인다. 당진에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외부로 공급하기 위한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공동취재단
◇ 발전지역에서 호남~수도권 송전망 경과지까지

이번 송전망은 기존 충남의 송전선로 문제와 성격이 다르다.

그동안 충남에서는 지역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외부로 보내거나 지역 산업단지에 공급하기 위한 송전시설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새롭게 추진되는 송전망에는 호남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충남을 지나는 노선들이 포함돼 있다.

유 처장은 "호남과 용인 사이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충남 주민들이 송전선로에 따른 피해와 사회적 부담을 떠안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갈등의 해법을 송전선의 경과지를 조정하는 데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를 가까이 배치하는 방향으로 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 자체를 함께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호남에서 어렵게 재생에너지 생산을 확대했다면 그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이나 산업단지가 그 지역으로 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발전시설은 지역에 두고 그 전기를 장거리 송전선로를 만들어 수도권으로 가져가겠다는 겁니다. 전력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산업이 이동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줄일 뿐 아니라 장거리 송전에 따른 전력 손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더 합리적입니다."

당진지역 농경지 위로 여러 갈래의 초고압 송전선로가 지나고 있다. 발전시설이 밀집한 당진 곳곳에는 농경지와 생활권을 가로지르는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설치돼 있다.

ⓒ공동취재단
◇ "에너지 지산지소가 출발점"

유 처장이 제시하는 해법은 '에너지 지산지소(地産地消)'다.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우선 소비할 수 있도록 전력 생산과 소비 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산업과 에너지 정책을 함께 설계하자는 것이다.

단순히 송전탑 몇 기를 줄이거나 노선을 변경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수도권에 반도체 산업과 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시설을 계속 집중시키고 필요한 전력은 지방에서 공급하는 현재의 구조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얘기다.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산업과 지역이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분담하고, 전력 생산지역에도 그 에너지를 활용하는 산업과 경제적 편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유 처장의 주장이다.

송전선로 계획 과정의 주민 참여도 이 같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과 한전의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거치면서 송전망의 시점과 종점이 정해진 뒤 주민대표 등이 참여하는 입지선정위원회에서 구체적인 경과지를 논의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유 처장은 "주민이 사업 자체의 필요성을 논의하기보다 이미 결정된 시점과 종점 사이에서 어느 마을을 지나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상황에 놓인다"며 "이 같은 구조는 지역민끼리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부분은 앞서 2편에서 살펴본 입지선정 절차의 문제를 넘어선다. 유 처장은 송전선의 구체적인 노선을 결정하는 단계가 아니라 전력 수요와 발전시설, 산업 입지를 결정하는 단계부터 지역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진지역의 한 주택 바로 뒤로 초고압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지나고 있다. 주택 지붕 너머로 거대한 송전탑이 맞닿을 듯 들어서 있어 송전시설과 주민 생활공간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준다.

ⓒ공동취재단
◇ 초고압 송전망만이 해법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이유로 대규모 송전망 확충에만 집중하는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대규모 발전소에서 수도권 등 멀리 떨어진 수요처로 전력을 보내려면 345kV와 같은 고압 송전망이 필요하다. 하지만 농촌 곳곳에 분산된 소규모 태양광 발전시설은 지역 배전망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계통 연결을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 처장은 "농촌 태양광 등 소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에서 생산된 전기를 계통에 연결하기 위해 345kV 고압 송전선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재생에너지 생산을 확대하고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22.9kV 배전망과 ESS(에너지저장장치)를 함께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시행하며 주요 전력망의 신속한 확충에 나섰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하려면 송전망 확충 역시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유 처장은 송전선로 건설 속도를 높이는 것과 함께 전력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을 줄이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전력 생산지는 따로 있고 소비지는 따로 있는 구조에서는 장거리 고압 송전망이 계속 필요합니다. 그러면 특정 지역은 계속해서 피해를 입고 희생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최대한 지역에서 소비하고,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하는 기업이 전력 생산지역에 입지하도록 산업정책이 바뀌어야 합니다."

송전선의 경과지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반복되는 갈등을 끊기 어렵다. 전력 생산과 소비의 거리를 줄이는 '에너지 지산지소'가 송전망 정책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 공동취재단 충북일보 이진경 기자·진안신문 류영우 국장·주간함양 임아연 부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