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탐색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과시한 데 이어, 하반기 연례 한미연합훈련(을지 자유의 방패·UFS)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백악관 기자단 앞에서도 북미회담을 직접 언급하며 대화 의사를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이에 화답하듯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에 '주요 국제문제들에 대한 입장 발표'를 통해 두 지도자 간의 사적 친분과 훌륭한 관계를 이례적으로 강조했다. 그동안 남한을 향해 쏟아부었던 거친 언사와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인 행보다.
그렇다면 실제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현재로서는 양측 모두 회담을 원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부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를 앞두고 가시적인 외교 성과가 다급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동시다발적인 대북 메시지를 발신하는 한편, 진행 중이던 연합훈련을 기습적으로 축소·조기 종료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심지어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비핵화' 문제는 꺼내지도 않고 있다. 철저히 정치적 이벤트를 노린 포석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오는 11월 중국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깜짝 만남 성사나 평상 정상회담설이 도는 이유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도 손해 볼 것 없다. 김여정 부부장은 미국을 향해 우호적 메시지를 던진 바로 다음 날에도 남한에 대해서는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미국에 대한 언급은 철저히 생략했다.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도 대미 비난은 자제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트럼프의 다급함을 간파하고 치밀한 손익계산을 하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과거 하노이 회담 시절과 달리, 현재 북한은 미국의 경제제재 속에서도 버틸 체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무기를 수출하고 파병 대가로 수십억 달러의 외화와 대규모 식량, 연료, 고난도 군사기술을 지원받고 있다. 특히 이러한 북·러의 전략적 밀착은 대미 협상력을 키우는 든든한 뒷배가 되고 있으며, 팬데믹 이전 수준인 30억 달러 규모로 회복된 중국과의 무역 역시 북한의 배짱을 키우는 요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브루스 클링너 맨스필드재단 선임연구원 등은 트럼프가 성과주의에 급급해 북한의 비핵화를 유야무야 넘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동 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트럼프가 한반도 문제에서 섣부른 타협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의구심이다. 트럼프의 조급증이 자칫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주거나,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대안을 수용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회담이 결렬되더라도 미 대통령과의 만남 자체로 정상국가이자 핵 강국 리더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시킬 수 있으니 밑질 게 없는 게임이다.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한미공조가 요청되는 시점이다. 북미 간의 급박한 대화 흐름 속에서 남한의 역할이 배제되는 소위 말하는 '코리아 패싱'을 차단해야 한다. 단순한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말고 워싱턴과의 정보 공유를 실시간으로 강화하는 한편, 우리의 안보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교한 '랭킹 가이드라인'을 미국 측에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우리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닌, 협상의 페이스메이커이자 중재자로서 공간을 확보해야만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북·미가 이미 물밑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기민하고 전략적인 외교력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