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숲 스케치

2026.09.03 14:35:30

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회장

허브 정원을 지나자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청아한 소리를 좇아 걸음을 옮겼다. 울창한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숲길 옆에 수심이 얕은 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명하게 흐르는 물이 계곡의 속살을 감춰주지 못하고 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포개져 작은 소沼를 이룬 물가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벤치가 보인다.

빈 의자에 앉았다. 진초록 나뭇잎의 방어벽을 뚫고 내려온 햇살이 수면 위에 반짝인다. 바위틈을 지나는 예쁜 물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졸졸졸, 또르르 또르르, 경쾌한 리듬으로 퍼지는 음향이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 준다. 재잘거리며 노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듯이, 맑은 계곡물이 노니는 모습을 감상한다. 머릿속에 떠다니던 잡다한 관념의 파편들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느슨해진 마음이 물결을 따라 동행한다.

작은 바위를 마주친 물이 잠시 주춤거리다 곧 돌아나가는 길을 찾아낸다. 낮게 누운 바위를 만나면 가볍게 타넘고, 솟아 있는 암석 앞에서는 뒤로 물러나 맴돌다가 다시 솟구쳐 흐른다. 잔잔한 물결이 징검다리처럼 가로질러 놓인 돌무더기에 이르렀다. 물은 이내 가느다란 물줄기로 낙하한다. 망설임 없이 미끄러지는 물살이 미니어처 폭포를 연출한다. 형체 없이 흐르던 물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난관을 통과하는 장면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걸림돌에 부딪힌 물살이 하얗게 흩어졌다가 다시 무형의 본형本形을 찾는다. 장애물 앞에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흘러가는 물살이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온다.

저 물길을 가로막는 바위와 돌이 없다면, 물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드러낼까? 다양한 여건에 대응하며 끊임없이 흐르는 물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크고 작은 장애물을 맞닥뜨리며 나아가는 우리의 삶도 물의 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평탄해 보이는 길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돌부리들이 복병처럼 나타날 때가 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 예기치 않은 상실과 이별 등. 때로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통과하는 여정이다.

나는 굴곡진 도로나 바위틈을 어떤 모습으로 지나왔을까. 어느 순간 고인 물이 되어 제자리에서 맴돌던 때도 있었으리라. 장벽은 가는 길의 방향을 바꿔 놓았지만, 그 길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탄탄대로에서 볼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마주하고, 간직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으로 남아 있으니.

맑은 계곡물이 여전히 같은 템포로 흐른다. 좁은 틈을 마다하지 않고, 막히면 돌아가고, 고이면 넘쳐흐른다.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의 힘을 새삼 생각한다. 한없이 유연한 몸짓을 보면서 '말랑말랑한 힘'의 강인함을 가르쳐준 어느 시인의 시구를 떠올린다.

'몸 낮추어

수평으로 흐를 수 있는 게지요.

수평선에 태양을 걸 수도 있는 게지요.'

-함민복의 <물> 부분

 

물은 거슬러 올라가는 법을 모른다. 고집 없이 몸을 낮춰 아래로 향한다. 흐르고 흘러, 마침내 석양을 받아 들고 품는 것이다.

숲을 벗어나며 바라본 하늘이 곱다. 폭염에 아랑곳없이 하얀 뭉게구름이 유유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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