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영동군 추풍령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조성사업 주민설명회에서 저실마을 대책위원회와 계룡리 골프장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주민, 시행사 관계자들이 발언권을 놓고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진경기자
[충북일보] "골프장에 찬성한다는 게 아닙니다. 가장 가까이 사는 주민들의 삶이 걸려 있으니, 사업이 추진된다면 주민 대책도 내놓으라는 겁니다." (저실마을 대책위원회)
"우리는 보상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청정한 환경을 지키고 싶은 겁니다. 골프장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계룡리 골프장반대 비상대책위원회)
1천800억원 규모의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조성사업이 추진 중인 영동군 추풍령면 계룡리. 골프장을 둘러싼 갈등이 사업자와 주민 간 대립을 넘어 주민사회 내부로 번지고 있다. <28일자 13면>
계룡리는 덕곡·상표·추곡·저실 등 4개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골프장 조성에 반대한다는 큰 틀에서는 한목소리다. 그러나 사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대응 방식, 사업자와 영동군에 요구하는 내용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지난 26일 추풍령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조성사업 주민설명회에서 저실마을 주민이 사업자 측에 질의하는 가운데 계룡리 골프장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주민들이 이를 지켜보며 발언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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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가까이 영동군청 앞에서 반대 집회를 이어온 저실마을 주민들과 노란 조끼에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지난 26일 주민설명회장을 찾은 덕곡·추곡을 중심으로 일부 상표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발언과 대응 방식을 놓고 주민들 사이에서 언성이 높아졌고,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신경전이 이어졌다.
같은 골프장 조성에 반대하면서도 두 주민 측의 대응 방식과 요구에는 차이가 있다.
저실마을 대책위원회 주민들은 사업 예정지와 가장 가까운 직접 영향권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골프장 조성 자체에 반대하면서도 사업이 계속 추진될 경우 이주를 비롯한 생활·영농 피해 등 구체적인 주민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부터 군청 앞에서 집회를 이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저실마을 주민은 설명회에서 사업부지 가운데 원형보전지를 제외한 상당 부분의 지형 변화 가능성을 거론하며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저실마을에는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많다"며 "소득 감소와 삶의 질 저하가 우려되는 만큼 저실마을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덕곡·추곡을 중심으로 일부 상표마을 주민까지 참여한 '계룡리 골프장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의 입장은 보다 단호하다. 이들에게는 이주대책이나 보상보다 '사업 자체의 백지화'가 우선이다. 골프장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애초 대책이나 보상을 논의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추풍령의 청정 농업환경 훼손 가능성을 강하게 우려하고 있다. 포도와 곶감 등 지역 농산물의 경쟁력이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비롯되는데 골프장이 들어서면 그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주민은 "추풍령은 포도와 곶감을 생산하는 청정지역이고 포도는 해외에도 수출한다"며 "우리는 보상을 원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환경을 지키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상도 필요 없다. 골프장 조성 자체를 원천 반대한다"고 했다.
두 대책위 모두 골프장 조성에는 반대한다. 때문에 한쪽을 '보상 요구', 다른 쪽을 '원천 반대'로 단순하게 나눌 수는 없다. 저실마을 역시 사업 철회를 요구하면서 사업이 계속 추진될 경우에 대비한 주민대책까지 함께 요구하고 있고, 다른 마을 주민들은 대책 논의 자체가 사업 추진을 전제로 비칠 수 있다며 백지화를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풍령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조성사업 주민설명회에서 사업자 측 관계자가 주민들에게 골프장 등 주요 시설 배치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앞줄에는 '계룡리 골프장 결사반대' 문구가 적힌 조끼와 머리띠를 착용한 주민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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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68만여㎡에 이르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던진 문제는 골프장 건설 여부만이 아니다. 사업 추진을 둘러싼 갈등이 주민사회 내부로 번지면서 수십 년간 한 마을을 이루고 살아온 주민들 사이까지 틈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동군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인허가 과정에서 환경성과 공익성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직접 영향권 주민의 피해 우려와 사업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다른 주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수렴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았다.
골프장 추진 여부만큼 어려운 것은 갈라진 주민들의 여론을 어떻게 수렴하느냐다. 서로 다른 주민들의 요구를 하나의 공론장에 담고 마을 공동체의 갈등을 최소화할 소통 창구를 마련하는 일이 추풍령 골프장 문제의 또 다른 과제로 떠올랐다.
한편, 추풍령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조성사업은 계룡리 일원 168만5천257㎡에 1천800억원을 들여 27홀 골프장과 숙박·휴양시설 등을 조성하는 민간개발사업으로, 앞으로 사업자 측은 군의회 의견청취와 각종 영향평가·심의 등 인허가 절차를 거쳐 2029년 착공할 계획이다. 영동 / 이진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