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은 야외로 나가기에 불편함도 있지만, 그 나름 운치가 있다. 내리는 비가 우산을 두드리며 만들어내는 운율, 비에 젖어 한층 짙어진 자연의 색감을 바라보면 감성에 젖는다.
제천의 산이 젖은 안개를 뒤집어쓴 채 능선을 지우고 도로변 낮은 자리에는 '수산1리'라고 새긴 둥근 돌이 있다. 그 옆 나무 표지판은 무심한 듯 이곳이 청풍호가 있는 제천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청풍호가 생기기 전에는 마을과 학교가 있었다. 청풍호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이전하고 학교도 자리를 옮겼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곳에 있던 학교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1954년 4월 1일 북평국민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1958년 4월 1일 세 학급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다 1984년 11월 16일 충주댐 건설로 수몰학교가 되면서 지금의 자리인 제천시 덕산면 수산리로 이전했다. 폐교한 날은 1995년 3월 1일이다.
지금 이 학교의 마당에는 아이들 대신 글램핑장이 있다. 나무 데크 위에는 하얀 글램핑 텐트가 나란히 서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분홍빛 냉장고와 전기포트, 아담한 싱크대 등이 캠핑의 불편함을 덜어준다. 한때 운동장이었을 잔디밭은 빗물을 머금어 초록빛이 더욱 짙어졌다.
마당 가장자리의 느티나무는 이 모든 변화보다 훨씬 오래 그 자리를 지켜오지 않았을까. 학교가 오기 전에도 서 있었고, 학교가 문을 닫은 뒤에도 남아 굵은 가지 사이로 빗소리를 흘려보내고 있다. 그 아래 걸린 해먹과 젖은 벤치는 누군가의 느긋한 오후를 기다리고 있다.
운동장 한편에는 지붕을 얹은 물놀이장이 있고, 튜브와 공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한여름 휴가철의 풍경을 보여준다. 물을 피해 산으로 올라왔던 학교에서 이제는 다른 가족들이 찾아와 휴식을 즐기며 새로운 시간을 보낸다.
지금은 캠핑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학교에서는 서른 번의 졸업식이 열렸고, 그동안 783명이 이 학교를 거쳐 세상으로 나갔다고 한다.
물을 가두면 마을이 잠긴다. 댐의 물이 차오르며 논과 길과 집이 물 아래로 가라앉던 그때, 학교도 함께 잠길 뻔했다. 그래서 학교는 짐을 꾸려 산 쪽으로 올라왔다. 옛 교실로 이어지는 복도에 들어서면 오래된 시간이 그대로 묻어 있다.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붉게 윤이 나는 나무 마루가 발밑에서 낮게 삐걱거리고, 손때가 앉은 창틀 너머로는 빗줄기가 흘러내린다. 벽을 가로지른 줄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아직도 매달려 있다. 크레용으로 꾹꾹 눌러 그린 나무와 성, 그리고 얼굴들.
복도 한쪽에는 낡은 물건들이 작은 박물관처럼 놓여 있다. 손잡이를 돌려 세우던 지구본과 스미스코로나 타자기, 알이 굵은 주판, 숯불을 넣어 달구던 무쇠 다리미를 만나볼 수 있다.
벼루와 놋촛대, 향로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나같이 학교가 문을 닫기 전의 세상을 살아온 물건들이다. 자판을 누르면 활자가 종이를 때리고 주판알이 딸깍거리던 시절, 셈과 글씨가 오롯이 손끝의 일이었던 시간이 이 좁은 복도 안에 고스란히 놓여 있다.
물은 한 마을을 잠기게 했지만 학교를 산으로 옮겨오게 했다. 세월은 그 학교의 문마저 닫게 했지만, 빈 교실과 운동장은 다시 새로운 활용공간으로 살아나고 있다.
아이들이 걸어둔 그림 위에도 손잡이가 굳어버린 지구본 위에도 오늘 밤 텐트에서 잠들 누군가의 지붕 위에도 그리고 빗물에 젖은 저 무궁화 위에도 시간이 겹겹이 내려앉았다.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굳이 구분하는 것보다, 그 겹겹이 쌓인 시간 속에서 한때 이곳을 지나갔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제천시 공식블로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