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327) - 화청령(華淸嶺)

2026.08.24 14:14:31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의 모충고개는 배티고개라는 옛 이름이 전해오고 있지만 옛 서적에는 화청령(華淸嶺)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 두 지명은 같은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지만 생겨나게 된 뿌리가 다르다 보니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지명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배티고개는 순우리말 소리와 의미를 그대로 간직한 소중한 자연 지명인데, 한자로 표기된 화청령(華淸嶺)은 어떤 유래를 가지고 어떻게 만들어진 지명일까?

조선 시대 구한말까지 이 일대의 행정구역명은 청주군 남주내면에 속한 '화청리(華淸里)'였으며 이 지역은 화흥리, 화청리, 수곡리 등으로 불리던 곳이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행정구역을 일제히 개편하면서 이 지역에 있던 화청리를 비롯한 화동리, 월교리 등의 주변 마을들을 '화흥리(華興里)'라는 이름으로 강제 병합하였던 것이다.

옛 지명인 화청리는 화청령이라는 고개 이름에서 유래가 된 것이다. 화청령이 역사 기록에 굵직하게 등장하는 계기는 바로 임진왜란(1592년)이다. 임진왜란 초기 왜군에게 빼앗겼던 청주성을 되찾기 위해 의병장 조헌과 박춘무, 승병장 영규 대사가 이끄는 1,500여 명의 의병, 승병 연합군이 청주로 진격했다. 이때 화청령 고개는 청주성 서문으로 진격하기 전, 전열을 가다듬고 작전을 펼쳤던 주요 전적지이자 배경이 되었으며 이 전투의 승리로 청주성은 임진왜란 육지전 최초의 성곽 탈환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과 낭성면 현암리 경계에 있는 '수레넘이고개'를 화청령(또는 華淸龍)으로 기록한 서적(청주목읍지)이 있는데 이것은 조선 시대 관찬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나 <충청도읍지> 등에 ​'화청령은 청주 관아의 남쪽 5리에 있다.'고 명시한 기록이 지도상(정확한 방향은 남서쪽)에서 일치하지 않다보니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위치에 대한 오인과 한자 표기의 유사성으로 인한 고지도 전사(轉寫·베껴 쓰기) 과정의 오기 등에서 온 혼선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그러면 화청령이라는 지명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화청령은 화청봉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보인다. 화청봉은 주민들에게 매봉산(해발 142m)으로 잘 알려진 산의 정상부 봉우리를 가리킨다. 매봉산은 망일산에서 시작해 서원대학교 앞 무심천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속하며, 남쪽으로는 잠두봉공원으로 내려앉고, 서쪽으로는 구룡산 정상과 연결되는 지형적 중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매년 새해 첫날 모충동 주민들이 모여 해돋이 행사와 시민 안녕 기원제(시산제)를 지내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매봉산'이라는 이름이 더 자주 쓰이고 있으나 지방지(읍지)의 기록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가장 유서 깊고 정확한 본래 명칭은 '화청봉(華淸峰)'이다. 1840년대에 발간된 <청주읍지(淸州邑誌)> '산천(山川) 편'에 이 봉우리의 이름이 명확히 등재되어 있으며 모충동에 있는 효자문 정려각(旌閭閣)의 주인공인 조선 시대 효자 연최적(延最績)의 삶을 기린 기록인 〈연최적 행장기(延最績行狀記)〉에도 '화청봉'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조선 시대부터 이 지역의 주요 거점 산봉우리로 공인되어 불렸음을 알 수 있다.

​ 또한 옛날부터 모충동과 수곡동 일대에 살던 주민들 사이에서는 화청봉을 '매봉산' 외에도 활을 쏘던 장소라는 의미에서 '활장봉'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지지만 문헌적 근거와 역사성을 따졌을 때 화청봉이 이 산봉우리의 가장 올바른 고유 명칭이다.

화청봉에서 비롯된 지명인 화청령(華淸嶺)은 한자로 '화려할/빛날 화(華), 맑을 청(淸), 고개 령(嶺)' 자로 표기되었으므로 직역하면 '풍광이 아름답고 맑은 고개'라는 뜻이며 이 일대의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물이 맑았던 곳이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청주(淸州)의 '맑을 청(淸)' 자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아 낭비성, 상당현이라는 옛 지명에서 청주(淸州)라는 지명으로 바뀌게 되는 뿌리가 바로 '화청봉, 화청령'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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