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을 때, 고즈넉한 숲길이나 사색의 공간을 떠올린다. 그럴 때 가벼운 발걸음으로 찾아가기 좋은 곳이 충북 제천에 있는데 대한민국 대표 힐링 공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배론성지'다.
'배론'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마을이 들어선 계곡 골짜기의 모양이 마치 배 밑바닥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순우리말 지명이다.
배론성지는 가을날 붉게 물드는 단풍 명소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싱그러운 여름날의 배론성지 역시 매력적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특정 종교의 교리를 넘어 한 인간의 치열했던 삶의 흔적을 되돌아보고, 푸르른 자연 속에서 마음을 정돈할 수 있는 배론성지의 생생한 여름 풍경을 전한다.
정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성지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원하게 펼쳐진 잔디밭과 계곡 물소리가 한여름의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한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날씨는 무더워지지만, 눈길 닿는 곳마다 펼쳐진 초록빛 덕분에 마음만큼은 시원해진다. 여기에 정겨운 매미 소리까지 더해져 여름날 특유의 청량한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처럼 한가로운 풍경을 품은 배론성지는, 사실 역사적으로 매우 뜻깊은 공간이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 알렉시오가 토굴에 숨어 지내며 비단에 박해의 참상을 적어 내렸던 '황사영 백서'의 산실이자, 1855년 프랑스 신부들이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신학교인 '성요셉 신학당'이 있던 곳이다. 아울러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사제였던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소가 안치된 거룩한 장소이기도 하다.
성지 곳곳에 정성스레 복원된 토굴과 초가집 형태의 신학당 건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종교를 떠나 암울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신념과 교육을 위해 헌신했던 선조들의 숭고한 발자취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딱딱한 박물관이나 전시관 형태가 아니라, 자연 지형 속에 유적과 건물이 조화롭게 녹아들어 있어 산책하듯 가벼운 걸음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탐색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역사적 깊이와 더불어 배론성지가 가진 가장 큰 미학은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점이다.
성지 중심부에 위치한 아담한 연못 주변을 거닐거나, 성지 뒤편 최양업 신부의 묘소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십자가의 길' 숲길을 걸을 때 느껴지는 평온함은 복잡했던 마음을 다스리고 여유를 찾게 해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배론성지 내부에 화려한 상업 시설은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자연 그대로의 색채와 성지 특유의 경건한 분위기에 오롯이 빠져들 수 있다. 벤치에 가만히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복잡했던 머릿속 묵은 생각들이 비워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성지를 나서는 길에는 또 하나의 소박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성지 입구 인근에 마련된 '로컬푸드 판매장'이다. 제천의 맑은 물과 바람이 키워낸 싱싱한 제철 농산물부터 건강한 약초 가공품까지, 지역의 신선한 먹거리를 정직한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는 알찬 공간이다.
북적이는 관광지로 떠나는 여름휴가 대신,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내면을 채우는 여행을 꿈꾼다면 제천 배론성지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짙은 녹음과 역사를 품은 제천 배론성지에서 뜻깊고, 평온한 제천의 여름을 경험해 보시길 바란다.
/제천시 공식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