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태양은 자비가 없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더울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닥쳐오는 한낮의 열기는 매번 낯설고 당혹스럽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아스팔트 위를 몇 걸음 걷는 것조차 거대한 모래주머니를 찬 듯 무겁다. 이럴 때면 몸은 본능적으로 에어컨 바람이 서늘하게 흘러나오는 실내를 찾아 도망치듯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문을 닫아걸고 문명의 시원함 속에 숨어 창밖을 내다보면, 이 무시무시한 폭염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푸름을 뿜어내는 존재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식물들이다.
물론 그들도 이 잔인한 더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햇볕이 가장 사납게 내리쬐는 한낮에는 꼿꼿하던 이파리들이 힘없이 축 처져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 광합성을 하려면 잎 뒷면의 기공을 열어야 하는데, 이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서는 기공을 여는 순간 몸 안의 수분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식물들은 저마다의 생존 작전을 펼친다. 잠시 기공을 닫고 숨을 고르며 고개를 숙이는 것, 그것은 굴복이 아니라 치열한 버티기다. 특히 대나무나 벼, 길가의 강아지풀 같은 벼과 식물들은 뜨거운 열기를 견디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거칠고 강인한 풀들이 있다.
여름철 마당이나 밭을 가진 이들에게 잡초는 공포의 대상이자 끝없는 전쟁의 상대다. 돌 틈 사이 보도블록 균열 심지어 작물이 자라야 할 밭 고랑에 어김없이 싹을 틔운다. 그 질긴 생명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 제초제를 뿌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예초기를 돌려봐도, 그뿐이다. 세찬 소나기 한 차례 쏟아지고 나면, 다음 날 잡초들은 언제 베였냐는 듯 씀벅 커버려 온 땅을 다시 초록으로 덮어버린다. 조금만 방심하면 애지중지 키우던 작물보다 더 높게 자라 기세를 뽐낸다. 오죽하면 제초제에 내성까지 생겨 웬만한 약으로는 약이 오르지도 않는다고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날카로운 칼날과 독한 화학 약품마저 비웃으며 자라나는 잡초를 보고 있으면, 문득 경외감마저 든다. 짓밟히고 잘려 나가도 흙 속에 깊이 박힌 뿌리 하나로 다시 일어나는 모습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외침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우리네 '풀뿌리 민족'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척박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한 뼘의 흙과 쏟아지는 햇살을 온전히 받아내며 자신만의 영토를 넓혀가는 저 강인함을 도대체 무슨 수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이 질긴 전쟁에서 인간이 잡초를 이길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묘수나 약은 없다. 그저 잡초보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것. 오늘 돋아난 싹을 뽑아내고, 내일 또 자라난 잎을 정리하는 성실함뿐이다. 잡초와의 전쟁은 결국 부지런하면 이기지만, 게으르면 지고 마는 정직한 싸움이다.
숨 막히는 8월의 더위 속에서 꼿꼿이 고개를 드는 잡초를 바라보며 다짐한다. 내 삶에 찾아오는 시련과 게으름이라는 잡초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면, 저 풀뿌리처럼 단단하고 부지런하게 하루를 살아가야겠다고 이길 수 없는 잡초를 이기는 유일한 길은 그들의 생명력만큼이나 뜨겁고 부지런한 삶의 태도를 배우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