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사회의 갈등관리, 미룰 일이 아니다

2026.08.18 14:36:35

송기선

옥천군 농촌활력지원센터장

전통적으로 농촌은 농업 생산에 기반한 마을 공동체였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농촌인구가 줄고, 저출생, 고령사회가 점차 고착되면서 농촌 공동체는 계속해서 약화됐다. 농업도 다양하게 분화되어 농촌은 농산업 뿐만 아니라, 제조업을 포함한 다양한 공장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농촌 풍경에서 농업과 농민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 농촌은 더이상 농민들의 공간이라 말하기 어렵다. 농촌에는 농업인보다 훨씬 많은 비농업인이 살고 있다. 충북 전체 인구 수는 약 160만 명이다. 그중에서 농업인 수는 '25년 기준으로 약 16만4천명 남짓으로 충북 인구의 10.3%에 그친다. 청주시를 포함해 시 단위 지역을 제외한 군(郡)지역만 봐도 농업인 비중은 24.5% 수준이다. 4명 중 3명은 농업인이 아닌 셈이다.

농촌에 농업인이 줄고, 비농업인이 많아지면서 여러 성격의 집단이 섞여 거주하는 현상을 '농촌의 혼주화(混住化)'라고 한다. 일본어식 한자어 표현이니 농촌 주민의 동질성이 약화되었다거나 여러 거주 집단이 혼합되었다고 풀어 쓸 수도 있겠는데, 아직 마땅히 대체할 표현은 없어 보인다. 아무튼, 요즘 농촌은 혼주화의 영향 탓인지 원주민과 이주민간의 갈등, 농업인과 비농업인간의 갈등처럼 이질적 집단사이의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농촌개발에서 일부는 찬성하고, 일부는 반대하는 집단내 갈등 상황도 늘고 있다. 전에는 대규모 축사 건립이 현안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태양광 및 재생에너지 확대와 송전선로의 문제, AI 데이터센터 건립 찬반 사례처럼 지역갈등의 양상도 다채롭다. 주민 참여와 대표성, 정보 공유, 재산권이나 환경권, 토지보상이나 이익배분 등 갈등을 키우는 요인도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도시나 농촌이나 사람이 사는 곳이니 갈등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다만, 혼주화의 영향으로 집단으로 구분지어 나타나는 갈등 양상이 농촌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도드라져 보인다. 우리의 정서가 아직 농촌은 목가적인 풍경과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인심 좋은 공동체, 늘 푸근한 고향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농촌 주민들은 대체로 갈등없이 화목하고, 협동과 화합이 잘 이뤄질 것이라 기대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식도 농촌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갈등을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늘어나는 농촌사회 집단 갈등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농촌을 잘 이해하는 갈등관리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에 많은 마을에서 이장은 덕망과 신뢰를 갖춘 중재자로 인식되었으나, 최근엔 이장이 갈등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읍면단위에서는 주민자치회가 주민들의 공감대 형성 및 공론화의 중요한 주체이지만 지방의회와 갈등을 겪거나, 이장단 등 기존 주민조직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주민자치회 구성이 특정 마을에 편중되어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행정과 갈등을 겪는 지역도 있다.

이때 지역에 대한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갈등의 원인을 진단하고 이해당사자와 갈등문제를 풀어갈 전문가가 없다면 갈등은 또 다른 갈등으로 확대, 재생산되기 쉽다. 지역 리더나 주민조직이 갈등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어제의 이웃이 오늘의 상대편이 되어 다투어야 할 때 농촌사회는 더 큰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두번째 필요한 것이 일상적인 갈등관리 학습이다. 1회성 집합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갈등 사례를 함께 학습하고 지역에 맞는 대응 매뉴얼을 조금씩 차근차근 정립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초기에 갈등관리가 된다면 갈등은 '비 온 뒤 땅이 굳는' 긍정효과가 있지만, '해묵은 갈등'으로 변질되면 막대한 재원을 쏟아부어도 마음속 앙금까지 치유할 수는 없다.

끝으로, 전문 갈등관리 조직으로서 중간지원조직의 역량 축적이다. 전담인력을 확충하여 갈등예방 대책과 사전 갈등영향분석 등을 시행하고, 필요시 공론화와 갈등조정 프로그램을 적시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각종 현안에 대한 정보공개와 토론과 합의를 통한 민관협치, 투명한 업무 프로세스 등도 갈등예방을 위한 필수사항이지만, 농촌공간재구조화법에 명시된 주민제안과 주민협정을 위해 전문 갈등관리 역량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농촌의 갈등관리,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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