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지긋한 노인 중에 지나치게 앳되고 발랄한 이름을 가진 분들이 있다. "개명하셨네요?" 궁금함을 누르지 못하는 경솔한 성정 탓에 그냥 넘기지 못하고 질문을 드리면 약간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주억거리신다. 맞는다는 의미리라.
이름도 시대별로 유행을 탄다. 출생신고 기준으로 시대별 선호이름을 보면 70년대 말은 지영, 80년대 말은 지혜, 90년대 말은 유진, 그 이후엔 서연, 서윤, 지우, 민서, 윤서라는 이름을 좋아했다. 70대 할머니가 민서라는 이름이라면 2010년 쯤 개명한 것으로 짐작된다.
코스모스처럼 여리여리한 이름을 가졌지만 당당한 풍채의 서연님에게 한 20년 전 개명하셨느냐고 물어보니 그걸 어떻게 아느냐며 깜짝 놀라신다. 마치 영험한 도사를 영접한 듯 경외스런 눈빛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바꾼다. 개명의 운명적 효과를 믿거나 더 세련된 이미지를 위해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 새로운 이름을 자랑하지만, 나이든 분들이 굳이 개명이 해야 할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정겹고 푸근한 순자, 복례, 길순을 버리고 얻은 하림, 은지, 지수라니, 어쩐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어느 TV 예능프로에서 별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출연했었다. 국정원, 성기왕, 김고환, 피해자 등 민망한 이름을 가진 출연자들은 의외로 개명 의사가 없다고 했다.
특이한 이름을 당당히 밝히면 호감도가 상승해 비즈니스 등에 유리하기 때문에 개명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설명을 듣고 스스로 위축되지 않으면 어떤 상황도 콤플렉스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이름이 트렌드를 타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아파트나 상품도 시대별 트렌드가 있는데 개나리, 무지개 같은 한글이름에서 외국어 이름으로 슬금슬금 이름이 바뀐 아파트의 경우 환경에 따른 별칭이 붙으면서 이름이 점점 길어졌다.
아파트 근처에 공원이 있으면 파크, 강이 있으면 리버, 숲이 있으면 포레가 붙고 도심지면 센트럴, 학원가가 인접하면 에듀 등이 추가된다. 이러한 추세에 따르다보니 20자가 넘는 이름을 가진 아파트도 등장했다. '동탄시범다은마을 월드메르디앙반도유보라'같은 이름인데, 한 술 더 떠 나주의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아파트는 25자 이름을 가지고 있단다.
한때 시골에서 시어머니가 못 올라오시도록 어려운 외국어이름의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란 우스개가 돌기도 했는데 25글자 쯤 되면 시누이와 조카까지 시어머니 손을 잡고 아파트를 찾는 촌극이 벌어질 것 같다,
이름으로 길흉화복을 조절해준다는 작명가들은 개명의 확실한 개운효과를 선전한다. 그러나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이제까지의 인생을 모두 갈아엎을 수 있는 것일까. 좀 더 세련된 이미지를 위해 혹은 인생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개명하려 한다면 시도해 볼만한 일이겠으나 섣부른 개명보다는 자기 미래에 대한 믿음이 우선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