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창간 직후부터 신문 배달을 시작해 20여 년간 독자들과 함께해 온 우종갑 운천지사장이 지령 6천호 발행을 앞두고 배달에 나서고 있다.
ⓒ김용수기자
[충북일보] "신문 한 부씩 배달하다 보니 어느덧 6천호까지 왔네요."
충북일보 창간 직후부터 본보 배달을 시작한 우종갑 운천지사장은 지령 6천호를 맞았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고, 흘러간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충북일보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 2월 창간 후 3~4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당시엔 갓 발행된 충북일보를 아는 도민이 많지 않았다.
충북일보 창간 직후부터 신문 배달을 시작해 20여 년간 독자들과 함께해 온 우종갑 운천지사장이 지령 6천호 발행을 앞두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용수기자
그는 "처음에는 충북일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독자도 많지 않았다"며 "한두 달 동안은 신문을 홍보지처럼 쭉 뿌렸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시작한 신문 배달은 2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 어느덧 6천호까지 이어졌다.
신문이 도착하는 시간은 밤늦은 시간이다. 그는 밤 11시 30분께 사무실에 나와 신문이 들어오는 대로 지역별로 분류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배달원들은 자정부터 새벽 사이 각자의 구역으로 신문을 챙겨 나간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시간, 같은 일을 반복했지만 그 사이 신문을 배달하는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창간 당시만 해도 15층 정도의 아파트가 높은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30층, 40층에 달하는 고층 아파트가 곳곳에 들어섰다. 인구가 늘고 도시 규모가 커지면서 바뀐 변화다.
이와 관련해 그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청주 복대동의 한 대단지 아파트가 입주할 당시, 오토바이를 이용한 신문 배달을 아파트측에서 막으면서 출입을 둘러싼 갈등이 생긴 것이다.
소음으로 밤늦게 오토바이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출입을 제한했고, 배달원들에게 돈을 내거나 스마트키를 구매하라는 요구까지 나왔다.
우 지사장은 "당시에는 이 문제로 이야기가 많았지만 결국 소통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며 "신문을 배달해야 하는데 들어가지도 못하고 돈까지 내라고 하니 많이 힘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신문 한 부를 독자의 문 앞까지 전달하는 일이 예전과 달라졌지만 그만큼 시대의 변화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충북일보 창간 직후부터 신문 배달을 시작해 20여 년간 독자들과 함께해 온 우종갑 운천지사장이 지령 6천호 발행을 앞두고 배달에 나서고 있다.
ⓒ김용수기자
특히 선거철에는 예상치 않는 돌발상황이 많아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았다.
선거 당일이면 개표 결과 등을 담기 위해 신문 제작이 평소보다 늦어지기 일쑤였고, 그래서 평소 저녁 시간에 들어오던 신문이 밤 12시께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능한 빠른 시간에 독자의 손에 신문을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잘알고 있는 그는 그때마다 몸이 달았다.
우 지사장은 "새벽에 조간이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독자들이 전화해서 '이게 무슨 조간이냐, 저녁에 오는 거 아니냐'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사정을 설명해도 독자 입장에서는 늦은 배달일 뿐이니 이해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하루하루 신문을 전달하는 과정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엮어지면서 충북일보는 어느덧 지령 6천호를 맞았다.
우 지사장 바람은 두 가지다. 첫째는 충북일보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지역민의 목소리를 고르게 담는 '균형' 잡힌 신문으로 남길 바란다.
둘째는 소상공인이 지역경제의 큰 축을 이루는 청주의 특성에 맞춰 이들의 이야기를 신문이 정기적으로 다뤄주길 기대한다.
오랜 시간 여러 지역신문을 접해온 그는 "다른 지방지도 그렇지만 충북일보가 특히 균형 잡힌 신문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지금처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지역을 바라보는 신문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전은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