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희의 산소편지 - 사격은 내 인생

2026.08.13 17:38:57

조정희

전 대한체육회 이사·충북사격연맹회장

ⓒ본인제공
2012년 그날, 런던 하늘은 맑았다. 비의 도시 런던이지만, 그날은 우리 대한민국을 맘껏 축하해 주고 싶었나 보다. 두 개의 태극기가 국기 게양대에 나란히 올라간다. 애국가가 울려 퍼진다. 중앙에 진종오가 서고, 한단 아래 오른쪽에 최영래가 섰다. 우리나라 사격선수가 나란히 금, 은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영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동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웃는데 은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아쉬움에 웃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영래의 눈물은 단순 아쉬움의 눈물이 아니다. 수술 후 고통과 역경을 이겨낸 감격의 눈물이었다. 내 얼굴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당시 나는 대한사격연맹 실무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런던 올림픽까지 2주 남기고 최영래 선수가 치질 수술을 했다. 당장 퇴원하지 않으면 선수를 교체해야 한다. 깊이 고민했다. 최병원으로 가서 의사를 만났다. 이번에 못 나가면 이 선수는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될 거다, 그만큼 사정이 급하다,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해달라, 하고 간곡히 부탁하자 의사가 수긍했다. 고통을 안고 영래는 진천선수촌으로 갔다. '진종오' 선수를 불렀다. 영래가 심적으로도, 육신 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으니 잘 도와주라고 부탁했다. 걸음도 제대로 못 걸으면서 연습하던 모습이 선하다. 진종호 선수 메달이 최고인 건 맞다. 그러나 영래의 은메달도 그에 못지않게 귀하다.

나는 청주 상고에서 사격을 시작했다. 연습할 사대도 없고 코치도 없었다.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담벼락에 사대를 설치하고 우리끼리 연습했다. 담장 위로 송충이가 기어가면 그것을 조준해 쏘기도 했다. 10점 만점을 맞추는 성취감이 너무 좋았다. 1973년, 문교부 장관기 전국학생사격대회에 충청북도 대표로 출전했다. 잔뜩 긴장하여 사선에 들어갔다. 서울, 경기도, 충남 선수들이 가지고 온 총은 외제 총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제 "화인베르바" 총이다. 모양도 멋있지만, 레버를 당겨 공기를 압축하는 식이다. 우리의 펌프식 총과는 차이가 있었다. 결과는 제주도 강원도만 제쳤을 뿐 하위권이다. 사격술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장비였다. 그런 총을 사 달라고 학교에 요구했더니 예산이 없다고 했다.

고등학생인 내가 충북사격연맹 이응선 총무님 댁으로 찾아갔다. 큰절을 올리고는 다짜고짜 연맹에서 보유하고 있는 총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 총은 도대표선수로 선발되어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선수에게만 빌려주는 총이라며 난감해하셨다. 나는 반드시 도대표 선수가 되겠다며 떼를 썼다. 결국 빌려주신 총으로 죽을힘을 다해 연습했다. 그해 경향신문사 태능에서 열린 전국 사격대회에 출전하여 전국 단체 3위에 입상했다. 처음으로 목에 거는 전국대회 메달이다. 제54회 전국체전에 출전하였으나, 좋은 성적은 못 냈다. 그러나 충북사격에 대한 희망의 꿈을 꾸는 계기가 됐다.

나는 사격을 코치도 총도 없이 외롭게 했다. 군대에서 사격 만점을 맞아 좋은 보직을 하면서 생각했다. 전역하면 충북사격을 위해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하리라고…. 전역 후 현도중학교에서 무보수 코치로 근무했다. 아이들과 직접 땅을 파서 사대를 만들고 가르치며 꿈을 심었다. 제4회 전국소년체전에서 우승했다. 충북교육청으로부터 사격 순회 코치로 발령받았다. 박봉으로 먹고살 길이 막막했으나, 이 길을 택했다. 청주여중 중앙여고 보은고등학교 등을 돌면서 선수들을 키웠다. 제59회 전국체전 사격경기에서 전국 준우승을 차지했다. 선수들이 나 같은 경험을 하지 않도록 간절히 바라면서 노력한 결과라 기뻤다. 충북사격은 2014년과 2015년, 전국체전에서 연이어 두 번이나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 제98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렸다. 전국체전에 참가하여 단상 앞을 지날 때 거수경례 하던 그 높은 자리에 내가 앉아 있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돌아보니, 사격은 내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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