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 8월 15일은 81주년 광복절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으로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날이다. 이날은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이면서 또한 민족 분단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올해는 일제강점기에 조국 독립을 위해 모진 탄압과 수탈을 견뎌내며 싸우신 선열들의 희생으로 이룬 광복절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이와 함께 남북분단이 고착화 되어가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급변과 국제정치 질서의 혼돈이 우리에게 깨어있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우리의 힘으로 쟁취 못한 독립
우리의 선조들은 왜 일제의 강점을 막지 못하고 36년 동안 치욕을 당해야 했는가. 조선이 멸망한 이유는 복합적이므로 명확하게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 인식이다. 망국적인 당쟁, 외척 세력이 권력을 잡고 휘두른 세도정치, 대원군의 쇄국정책, 고종 황제의 무능과 부정부패, 봉건 착취제도, 제국주의 열강의 서세동점, 을사오적을 비롯한 친일 분자들의 매국 행위, 일제의 침략 근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을 스스로 기르지 못하고 망국의 길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해방과 동시에 남북분단을 맞게 된 근본 원인도 우리의 힘으로 쟁취한 독립이 아니라는 한계가 가져온 비극적 유산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을 패망시키는데 미국이 중심이 된 연합국이 주도했고 우리는 참전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독립군 활동과 독립운동을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전개했지만 대일전선 연합국의 자격이 없어 해방 공간의 주체로서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열강들의 한반도 신탁통치 결정에 의해 38도선을 경계로 남한에는 미군이, 북한에는 소련군이 진주하여 해방은 되었으나 남북분단이라는 민족 모순이 잉태되었다. 스스로 나라를 다스릴 결정권도 영향력도 없었던 것이다. 조국 독립을 위해 그토록 해외에서 투쟁해 온 임시정부 요인들조차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민족분단의 비극은 분단에 그치지 않고 북한의 남침에 의한 1950년 6.25 한국전쟁 발발로 동족상잔의 엄청난 상처를 피하지 못했다. 소련군과 중공군, 북한군의 남침 세력과 미군, 유엔군, 한국군의 연합세력이 3년 간 한반도를 피로 적시고 1953년 판문점 휴전 협정으로 총성은 멈췄으나 전쟁을 끝내는 종전은 아니다.
이때의 휴전 협정 공식 서명 당사자는 마크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김일성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팽덕회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의 3자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 협정은 한반도 영구분단 고착화의 우려가 있음을 들어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협정 서명을 거부함에 따라 남한 측은 휴전 협정 서명 당사자가 아니다. 한국의 동의 없는 미군과 유엔군의 일방적 휴전 추진에 강하게 반발하며 1953년 6월 수 만 명의 반공포로 석방 등을 강행했으나 힘없는 남한이 휴전협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정한 독립국가의 의미 성찰
남한은 비약적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성취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독립한 제3세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하는 국가로 변모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 공격 위협에 직면한 안보 불안을 동맹국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진정한 독립국가의 의미를 되묻고 성찰하게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국-이란 전쟁이 남의 나라 안보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