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날씨가 제법 쨍쨍하다. 텃밭에 채소를 심기위해 밭고랑을 만들던 날이었다. 나는 고랑을 만들고도 남은 흙을 바라보았다. 황토마사가 부드럽고 깨끗한 산흙이다. 도시농부로 작업을돕는 일꾼이 만들어준 고랑을 바라보면서, 애플수박과 참외 모종을 심기로 결정내렸다. 각각 100개씩 구입했다. 어떤 모종보다 가격이 비싸서 내 마음이 무겁다. 잘 살릴수있을까?? 여린 모종이 다치지않게 조심스럽게 트럭에 싣는다. 밭고랑에 모종을 심을때 조바심이 났다.
우리농장에서 가장 높은밭에 심기로 결정을 내린 이유는, 7년 묵힌 계분이 쌓여있던 곳이라 밑거름으로 충분히 사용할수있기 때문이었다. 정성껏 모종을 옮겨심고 물을주었다. 워낙 높은 밭이라서 물은 에스에스 물차에 싣고 주전자에 옮겨서 모종 구덩이에 부어주어야만했다. 팔도 다리도 아프지만 오직 한가지 일념으로 최선을 다했다.
심은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제일 먼저 수박밭으로 향했다. 혹시나했는데 아니 이런~ 수박과 참외 모종잎들이 타들어가면서 말라가고있다. 예민한 이파리들이 햇볕에 그만 타버린것이다.
이웃 지인에게 질문했다. 다행이도 아직 뿌리는 살아있어서 새순이 나오면 살아난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그 다음날부터 그 밭에서 살다시피했다.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그밭에서 서성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잎이 나오더니 넝쿨을 뻗기 시작했다. 미생물과 천연영양제를 물에 섞어서 정성껏 뿌려주었다.
그 다음 날이다. 나는 다시 발걸음이 수박밭으로 향했다. 어제 시들했던 이파리들이 땅기운을 받았는지 생생해졌다. 며칠이 지났다. 비가내린다. 비를 맞은 모종이 더욱 파릇하게 팔랑거린다. 이제 잘 자라줄거란 믿음이 생겼다. "부디 잘자라서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아 주렴~" 속으로 중얼이면서 밭에서 내려왔다.
수박과 참외 심는것을 적극 반대했던 남편이 내게 물었다. "당신의 그 정성으로 살아났구만~"
날마다 주전자로 물을 주는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점적호스를 설치해 주기로 약속했다.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뛴다. 도시농부님의 도움까지 보태어 점적호스 연결 작업을 마치고 거치대까지 만들어 주었다.
수박밭 물 걱정에 잠을 설치던 나는 이제 발을 뻗고 잠을 잔다. 거치대까지 만들었으니 세상 걱정 내려놓았다. 남편과 나는 마음껏 뻗어내린 넝쿨을 집게로 거치대 망에 올려주면서 이마에 땀을 닦는다. 서로 입가의 미소를 바라본다. 우리 손자들이 여름방학에 오면 이곳에서 주렁주렁 매달린 애플 수박과 참외를 따면서 얼마다 기뻐할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각에 잠긴다.
자연이 해줄 몫의 결실을 차분하게 기다리며 충실한 자세를 낮추고, 신발이 닳도록 밭둑길을 걸었다. 오늘은 우리집 고추밭 두둑을 만드는 날이다. 관리기를 기술센타에서 임대로 남편이 싣고왔다.
우리는 작년 고추농사했던 곳 비닐을 벗겨내고, 거름을 뿌린 뒤 잔돌을 골라냈다. 그곳에 트렉터를 빌려서 흙을 부드럽게 갈아놓았다. 그런 뒤 관리기로 골을 만들고, 점적호스를 깔을 때, 나는 그 옆에서 하루종일 시중을 들다보니 무릎이 시큰 거렸다.
점적호스를 모두 깔아논 밭고랑 윗쪽에 물이 조금씩 "똑똑" 떨어진다. 부드러운 흙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고추 모종들이 그 물을 받아 먹으면서 튼튼한 뿌리를 키울것이다.
연두빛이 초록으로 건너가는 계절 하늘에 새 한 마리가 조용히 날아간다.
"탈탈탈" 비닐 멀칭을 시작했다.기계소리가 마당까지 울려퍼진다. 어느 농업 박사님은 이런말을 내게 해주셨다. 채소중에서 고추농사만큼 어려운 작물이 없다면서 고추농사 잘 지을수있다면 어떤 채소도 기를수있다고 하셨다. 올해 고추농사 10년째 짓고있다. 남편과 같이 고추농사를 지으면서 힘이들지만 아직은 실패하지않았다.
햇빛과 물이 농삿꾼에겐 자식이나 같은데, 숨소리 붉어진 숲에서 농사일을 터득하며 무조건 순응하는 자세를 배우고 익혔던 지난날들.... 농사라는게 때를 놓치면 모든게 한순간에 망치는줄 잘알고있다
나는 오늘도 여름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는 산비탈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새벽 아침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산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