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향기

시인․화가 양선규

2026.08.11 14:50:51

양선규

시인·화가

넓은 그늘과 시원한 바람에게 마음껏 기대고 싶은 뜨거운 여름이다. 이른 아침, 향엄사(香嚴寺) 오르는 길 옆, 짙은 녹색 숲이 있는 무량산(無量山)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유난히 요란하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경계를 하는 듯 뚝 그쳤다. 잠시 참나무, 소나무 숲이 우거진 넓은 그늘이 있는 고요의 숲에 들었다. 날씨는 무덥지만 한여름의 풀 향기와 송진 내음, 참나무에서 품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덕분에 잠시나마 몸의 피로를 덜어주고 더위를 잊게 해준다.


올여름이 유난히 덥고 습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의 고기압이 강하게 자리 잡으면서 맑은 날이 많고, 남쪽에서 덥고 습한 공기가 자주 밀려와서 그렇다고 한다. 결국 강한 고기압, 높은 바다의 수온, 그리고 기후 변화가 겹치면서 덥고 습한 여름이 지속되어,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강변의 백일홍, 양선규 촬영, 2026

날씨가 더워지면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사람들이 많다. 피서철이지만 피서를 가는 사람도 드물고 야외에서 활동하기 힘들다 보니, 건설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농사짓는 사람들, 특히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더위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어 주말과 휴가철에도 가급적 외출이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자영업자들도 경제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기후 위기의 문제는 어제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밀레니엄 이후, 계속 거론되어 왔지만 요즘 들어 그 심각성은 그냥 지나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크다. 결국 인간의 탐욕으로 저지른 일이지만 수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기후 위기 앞에 무릎을 털썩 꿇고 나서야 뉘우칠지 모르겠지만, 매스컴에서 이야기하는 극한 더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름밤의 별은 한없이 높고 유난히 밝다. 그 빛은 어두울수록 더욱더 빛난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더위 속에서도 어둠이 낳은 별이 있다. 이른 새벽, 하늘은 영롱한 이슬 머금은 향이 아주 진한 여름의 꽃들을 쉬지 않고 부지런히 피워내고 있다. 지난봄, 아는 지인이 건네준 백일홍 몇 포기, 문학관 뒤뜰 금강변에 심었는데, 곁가지가 자라면서 빨강, 노랑, 분홍의 꽃들이 별처럼 떠있다. 가녀린 바람이 불 때마다 서로의 살을 비비며 여름의 향기를 펼쳐 놓고, 살랑살랑 부드러운 노래 부르고 있다. 여름 하늘의 별과 열기로 가득한 대지에 피어있는 꽃, 나무 그늘과 바람이 있어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에 곡식이 익고 줄기가 모질어진다는 말이 있다. 적당한 더위와 바람이 가을을 부르고 마침내 들판의 곡식이 익는다는 이야기다. 드디어 입추(立秋)가 지났다. 바야흐로 가을에 들어서는 절기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가을을 부르는 매미들이 귀청이 따가울 만큼 울어댈 것이다. 여름을 나느라 힘들었던 사람들, 이제 그만그만 여름의 향기는 보내고 어서어서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고 한없이 울어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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