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의 그림 이야기 - 생명의 의미를 탐구한 조각가 문신

2026.08.05 15:07:48

자화상

ⓒ뉴시스
조각가 문신(1923~1995)의 사진을 볼 때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1929~1993)과 열연했던 그레고리 펙(1916~2003)과 우리나라 배우 남궁원(1934~2024)이 생각난다. 미술가 중에 가장 잘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신은 선이 굵고 전형적인 미남형이다.

문신은 얼굴만 잘생긴 것이 아니라 걸작들을 많이 남긴 조각가이다. 처음에는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화가로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가면서 조각가로 변신해 성공한 특이한 미술가이다.

문신은 일본인 어머니와 광부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1923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문신의 삶은 순탄치가 않았다. 아버지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처가로부터 외면당한다. 그렇기에 문신이 다섯 살이 되던 해에 한국행을 감행한 부모를 따라 그의 고향이 되는 마산에 정착한다.

희망을 품고 정착한 마산이었지만 어머니가 좀처럼 적응을 못하자, 부모는 일본으로 건너가고 문신은 할머니와 마산에 남는다.

그 후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삼촌에게 맡겨졌다. 외로운 시기를 보내던 중 12살 때 아버지가 돌아온다. 아버지는 많이 배우지 않아 비록 막노동을 했지만 예술적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 재능을 물려받은 문신은 초등학교 졸업 후 특기를 살려 온갖 궂은일을 한다. 자동차 수리와 영화 간판 그리기를 주로 했는데 재주가 좋다고 소문이 나 진주, 통영까지 간판을 그리러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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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되고 싶다는 큰 꿈을 꾸고 있는 문신에게 마산은 너무 좁았다. 일본으로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술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맘에 문신은 1938년 무작정 일본으로 밀항한다. 어머니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16세에 도쿄 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한다. 부모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여러 일을 한다.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알뜰히 모은 돈을 아버지에게 보내 땅을 사달라고 부탁한다. 많은 세월이 흘러 그 땅에 문신 미술관이 세워진다.

22살, 광복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온 문신은 개인전을 연다. 그의 그림은 일본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후 중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잠시 하다가 과감히 사직하고 프랑스로 가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다.

교사로 평생을 살아온 필자는 작품 활동을 위해 안정된 직업을 마다하고 험난하지만 큰바다를 선택한 그의 도전 정신이 존경스럽고 부럽다. 그런 큰 그릇이었기에 위대한 예술가가 됐을 것이다.

1961년 38살에 50불을 갖고 프랑스로 간 문신은 예술에 대한 열정은 강렬했지만 현실은 암울했다. 당장 먹을 것과 잘 곳이 없었다. 다행히 파리에 먼저 정착한 4년 선배 화가 김흥수(1919~2014)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고성(古城)을 보수하고 개조하는 일이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뜻밖에도 그는 자신이 회화가 아닌 조각에 더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3년간 일을 하면서 화가에서 조각가로 변신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조각가 문신 서거 20주년 기념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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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은 "만물은 엄연히 원초에서 생성했어도 그것을 시각으로 볼 수는 없었다. 인간은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우주)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그들 자체가 실재를 가진 형태들이다. 나는 이 형태들이 생명의 의미를 가지게 되길 바라며 작업을 했을 뿐이다."라고 작품 세계를 역설했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문신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1980년 고향 마산으로 돌아온다. 당시 그의 나이 57세였다. 그가 갑자기 돌아오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국제적 반열에 오른 문신을 영원히 붙잡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귀화를 제의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박정희(1917~1979) 대통령이 문신과 같은 마산 출신인 경호실장 박종규(1930~1985)를 비밀리에 파리로 보냈다고 한다. 프랑스에 간 박종규가 간곡하게 귀국을 요청하자, 많은 고민 끝에 요청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고향 마산으로 돌아온 문신은 젊은 시절 사 놓았던 언덕배기에 '문신 미술관'을 짓기 위해 14년간 작업에 몰두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술관 완공 1년 만에 하늘의 별이 되고 만다.

2010년 창원, 마산, 진해가 합쳐져 '창원특례시'가 되고 미술관은 창원시에 기증돼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몇 년 전 지인 초청으로 창원에 갔을 때 문신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미술관 언덕 위로 올라가니 양지바른 곳에 문신의 묘가 있었다. 비석에는 "나는 노예처럼 작업하고, 서민과 함께 생활하며, 신처럼 창조한다."라는 묘비명이 새겨져 있었다.

문신의 피와 땀이 어린 미술관에서는 안타깝게도 앞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마산 앞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문신은 고층 아파트 건설에 극렬히 반대하며 마산을 떠나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다고 한다. 마산 문화계에서도 탄원서를 올리기도 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이기지는 못했다.

문신미술관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울림을 주고 있다.

문신미술관 같은 검이불루 화이불치한 미술관이 전국 곳곳에 세워지길 기대해 본다.

증평에 이동우 미술관이 있듯이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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