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인 삼복(三伏)에 갇힌 요즘이다. 복날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로, 하지 후 셋째 경일(庚日)이 초복, 넷째 경일(庚日)이 중복, 입추 후 첫 경일(庚日)이 말복이다. 그래서 삼복(三伏)을 삼경일(三庚日)이라고도 한다.
복(伏)날의 복은 엎드릴 복으로, 가을의 금(金)기운이 땅으로 슬금슬금 내려오다가 여름의 펄펄 끓는 화(火) 기운을 만나자 녹아버릴까 무서워 바짝 엎드려 굴복한 형상이다.
경일(庚日)이 10일 간격으로 떨어지므로 초복에서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그러나 해에 따라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월복(越伏)이라고 한다. 올해가 바로 그 무서운 월복 해다. 다른 해보다 열흘을 더 복중에 묶이게 됐으니 고역도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게 됐다.
경일(庚日)에 일을 하면 다친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조상들은 경일인 복날엔 일손을 놓고 보양식을 먹으며 쉬었다. 미신이라기보다 지쳐서 쓰러질 정도의 폭염을 피해 건강을 지키려는 현명한 방책으로 생각된다.
육당 최남선이 조선의 문화와 풍속 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집필한 조선상식(朝鮮常識)에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는 말이 나온다. 더운 여름의 기운을 굴복시켜 제압한다는 의미다.
육당이 말한 서기제복(暑氣制伏) 중 더위를 이기기 위한 으뜸방편이 보신음식을 즐기는 것으로, 삼복에 특별히 준비한 보양식은 손꼽아 기다리는 별미였다. 잘 먹지 못했던 옛사람들이 보양식을 찾았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영양과잉으로 불어난 허리둘레를 걱정하는 현대인도 복날엔 보양식을 먹으려 기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복날을 핑계 삼아 어울림 판을 펴고자 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
재미진 점은 여름철 보양식의 대부분이 펄펄 끓는 탕이라는 사실이다. 삼복더위는 뜨거운 탕으로 다스려야 하며 열은 열로써 이긴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을 정설로 지킨 것이다.
대중적인 보양탕 중에서도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는 음식이 삼계탕이다. 악귀를 쫓아 무병을 기원하는 벽사(辟邪)의 의미로 팥죽을 쑤어 먹기도 했으나 역시 가장 만만한 보양식은 삼계탕이었다.
닭에 인삼 등을 넣고 고아서 먹는 삼계탕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즐겨먹었던 닭백숙이 원조였다. 지금처럼 호사스런 '삼계탕'은 1960년대 이후 인삼 수급이 원활해지면서 정착됐다. 삼계탕을 초기에는 '계삼탕(鷄蔘湯)'으로 불렀는데, 흔한 닭보다 귀한 약재인 인삼을 대접한 명칭으로 느껴진다.
"보들보들 연하다고 삼계탕집 팔려가고/토실토실 살 붙으면 튀김집에 튀겨지고/포동포동 튼실하면 백숙집에 고아지네//날개조차 닭발조차 가슴까지 도려지고/똥집마저 별미라고 소주안주 진상되네" 닭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닭 푸념 타령'이다.
닭을 요리할 때 인삼이외에도 황기, 마늘, 밤, 대추, 은행에 율무, 녹두 등을 첨가한다. 인삼의 약효는 체내 효소를 활성화시켜 신진대사를 촉진해 피로회복을 앞당기고, 마늘은 강장제이며 밤, 대추는 위장을, 율무는 당뇨의 예방과 노폐물 제거하는 기능을, 은행은 폐를 보호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좋다는 식품들을 한꺼번에 섞어 조리하는 것은 보양식의 효과를 반감시킨다고 한다. 목적과 효용에 따라 적당히 가미해야 보양이 되는 것이 삼계탕뿐이겠는가. 과유불급,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고 했다. 세상사도 적당히 삼가야 더 이로울 수 있음을 삼계탕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