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아무 연고 없는 시골로 귀촌할 때였다. 터를 잡고 집을 짓기 위해 구옥 3채를 헐었더니 폐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를 어디 둘 데가 없어 막막하던 차에 옆집 형님이 "우선 우리 집 마당에 가져다 놓게" 하고 선뜻 말했다. 나는 그때의 고마움을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그때 형님은 그렇게 쌓인 폐자재 처분을 도와주려고 땔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락해 그들이 와서 말끔히 실어 가도록 했다. 아마 내가 했으면 폐기물 업체 불러 상당한 비용 들여 처리했을 것이다. 형님은 처음 와서 시골 물정을 모르는 나를 위해 다들 경계와 사시의 눈초리로 대하는 중에 그렇게 신경 써 주신 것이다. 그 뒤로부터 나는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 분을 친형님 이상으로 여기고 서슴없이 '형님'으로 부른다.
집을 짓고 나니 여기저기 할 일이 많고 무엇보다도 동네 사람 대하기가 무척 부담스러울 때였다. 내 집 뒤에는 산이고 옆에는 논인데 논 임자는 나한테 특히나 별 이유도 없이 사납게 대했다. 논과 경계에 도랑이 있고 내 딴에는 내 땅 언덕의 흙이 흘러내려 도랑을 메꾸면 도랑물이 넘쳐 논으로 흘러 들어갈까 염려되어 도랑 위쪽에 돌을 쌓았다. 그랬더니 그는 무슨 심보인지 나 없는 새에 쌓은 돌을 무너뜨려 버렸다. 이유는 오히려 자기네 논으로 물이 들어온다고 했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황당하고 분했지만 처음 들어온 사람이 대놓고 싸울 처지도 아니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었다. 그때 형님은 조용히 다가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며 조금만 참으라고 친동생처럼 위로해 주었다. 그때의 고마움과 위로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형님은 배타성이 강한 이 집성촌 동네에 외지인들이 들어와 내가 겪은 비슷한 텃새를 당할 때마다 나서서 중간 입장에서 조정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뒤로는 그 사람한테 "뭐 처음이니까 그러려니 하라고, 좀 지나면 나아져"라고 다독여 주었다. 형님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니 고마워하며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동네에 외지인이 많이 들어와 외지인 원주민 구성이 반반 되어 예전 같은 텃새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동네는 형님 같은 분이 계셔서 '경계'에서 '화합'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나는 어느새 동네에 뿌리박고 살 마음이 살아났다.
형님은 올해 팔십 중반이다. 세월은 누구에게도 어김없듯 이제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 안타깝다. 형님은 이미 우리 동네에 넉넉한 느티나무 같은 분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지금 그 자리에서 마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계셔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