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귀하게

2026.07.21 14:16:18

이명순

수필가·한국어강사

그분을 만난 곳은 다문화센터였다.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동료 교사로 9년 가까이 함께했다. 적지 않은 연세에 일을 시작하셨지만 언제나 밝은 미소와 긍정적인 마음으로 업무에 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퇴직한 지 4~5년이 지난 어느 날, 자서전 쓰기 사업 때문에 일하시는 금왕도서관에 찾아가서 다시 만났다. 오랜만이었지만 환한 미소와 힘 있는 목소리는 예전 그대로였다. 일흔 후반의 나이에도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모습에서 살아온 세월이 그대로 느껴졌다.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젊은 시절의 어려운 시간을 신앙이 삶의 큰 버팀목이 되어 견디게 해 주었다는 말씀을 들었다. 믿음으로 중심을 잡고 살아왔기에 지금은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나누며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하셨다.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며 만날 때마다 늘 고맙다며 식사는 꼭 본인이 사겠다고 하신다. 젊은 사람들은 돈 쓸 일이 많으니 조금 더 여유 있는 사람이 사는 것이라는 말씀에는 상대를 향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넉넉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때 여유로운 노년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분을 통해 배운다. 노후에도 일하고 배우며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활력을 준다.

얼마 전에는 팔순을 기념해 출간한 세 번째 시집을 선물로 받았다. 올해 충북 문화예술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충주와 청주를 오가며 사업 설명회에도 참석하시더니, 어느새 시집을 출간하셨다. 표지 그림도 직접 그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열정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부끄러워졌다.

나이가 들어가며 앞으로 남은 시간을 알 수 없기에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다고 하신다. 요즘은 노인복지관에서 한지로 자신의 수의(壽衣)를 만들며 언젠가 맞이할 마지막을 담담히 준비하고 계신다고 했다. 삶의 마지막을 담담히 준비하는 모습에서 주어진 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의 평안을 느낄 수 있었다.

선물 받은 시집을 펼치며 미루기만 하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사람은 나이를 먹어서 늙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멈추고 삶에 대한 열정을 잃을 때 늙는다는 사실을 그분은 삶으로 보여 주셨다. 잘 늙는다는 것은 긴 세월을 사는 일이 아니라 오늘을 성실히 살아내는 것임을, 그리고 그 삶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울림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팔순에도 피어나는 열정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귀하게 살아온 시간이 피워 낸 꽃이었다. 선물 받은 시집을 덮으며 나 또한 오늘을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삶의 주인은 결국 나 자신이기에 오늘이라는 시간을 가장 귀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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