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이 주인공인 '심청전'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고전소설이다. 그런데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판 심청의 효심은 제 스스로 우러난 것이었을까·
창작 국악 팀 '더미소'는 판소리 '심청'을 재해석해 '심청은 억지춘향'이란 곡을 만들었다. 강요된 효에 떠밀린 심청의 갈등을 '억지춘향'에 빗대어 표현한 가사가 울음보다 찰지다.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이 팔려/선인들을 따라가는데//이런 된장, 아버지/그게 말이 될 말이오./공양미 삼백 석에 눈을 뜬다면/이 세상에 봉사가 어디 있겠소.//내 나이 꽃다운 열여섯이오./내 발로 황천길이 웬 말이오."
부모 봉양에 집착하는 우리의 효 문화는 부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넘어 보상과 의무를 요구했다. 자식이 보험인 셈이다. 이를 받쳐주는 성어인 '반포지효(反哺之孝)는 '돌이켜 먹이는 효도'라는 말로 어버이의 은혜를 되갚는 자식의 지극한 효행을 의미한다.
진나라 무제(武帝)가 신하인 이밀(李密)에게 높은 관직을 내렸으나 이밀은 할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며 관직을 사양했다. 역정을 내는 무제에게 이밀은 늙은 어미를 돌보며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는 까마귀의 효심을 아뢰었다.
"미물인 까마귀도 반포지효를 행합니다. 사람인 제가 늙으신 할머니를 끝까지 봉양할 수 있도록 헤아려 주십시오." 이밀이 진무제의 부름을 거절하며 황제에게 올린 '진정표(陳情表)'에 실린 이야기다. 중국사 최고의 효행 명문인 진정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효자가 아니라고 했다.
까마귀는 서너 개의 갈색 반점이 있는 푸르스름한 알을 낳는데, 수컷의 보호를 받은 암컷이 20여 일 동안 품어 새끼가 알에서 깨면 어미는 두어 달 동안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 그렇게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자란 까마귀는 쇠약해진 어미에게 먹이를 공급하며 자신을 길러준 은혜에 보답한다고 알려졌다.
새 중에서 자식이 부모를 먹여 살리는 건 까마귀뿐이라는 반포지효가 사실처럼 굳어지면서 까마귀는 효의 상징이 됐고, 효를 실천하지 않는 인간은 까마귀보다도 못한 패륜아로 취급됐다. 그런데 까마귀는 은혜를 갚는 새가 아니라고 한다. 털이 부풀어 어미 까마귀보다 덩치가 커 보이는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는 어미의 모습이 착각을 일으킨 것이다.
다시 가련한 심청을 생각해보자. 심청전은 극단적인 효의 실천을 그리고 있다. 끼니도 잇기 어려운 형편에 앞 뒤 생각 없이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키로 한 아버지 탓에 열여섯 꽃다운 여식은 죽음의 바다에 던져졌다.
심 봉사가 심청을 데리러 온 뱃사람을 붙들고 울며 몸부림쳤다하나 자신을 위해 딸을 사지로 내몬 행동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자녀착취다.
부모와 자식 간 사랑의 거래는 보통 세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가 무조건 베푸는 일방적 관계다. 두 번째는 준만큼 받길 원하고 서로 챙기는 호혜의 관계다. 세 번째는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제 자식에게 내리는 내림의 관계다. 일방적 관계와 호혜의 관계가 축복이라면 가장 자연스런 관계는 내림의 관계이리라.
집안의 가장이던 딸의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며 딸을 배은망덕하다 음해했던 톱가수 장윤정의 어머니가 절연한 딸의 명성을 이용해 다시 사기행각을 벌였다는 소식이 들린다. 효를 강요한다면 부모가 아니다. 부디 K장녀들이 심청이로 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