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그리운 어머니

2026.07.08 17:15:53

ⓒ클립아트코리아
거의 이십 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지금은 어머니가 저세상에 가시고 곁에 안 계셔서 어떤 말을 다 해도 눈치가 안 보여서 편하다. 변변치 못한 어머니의 이삿짐을 흉보려 한다.

어머니는 대전 이모님 댁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집을 마련하고 사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적적하던 차에 이모님과 이웃에서 서로 내왕하며 다정하게 사시다가 연세가 드시어 우리 집으로 모시게 됐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다 어쩔 수 없으셨는지 누그러지셨다. "어머님, 저희가 모시면 어머님은 불편하실지 몰라도 저희는 든든하고 좋아요. 짐은 다 정리하시고 몸만 오셔요." 신신당부를 드렸다. 살림은 모두 다 정이 들었고 일상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다. 남에게 주거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세간살이들이다. 거의 평생을 곁에 두고 정을 담은 물건들이니 버리는 것은 자식을 버리는 기분이라신다. 함께 도와 이삿짐을 챙기며 "어머니, 방 한 칸에 놓을 만큼만 챙기셔요." 하며 다 버렸어도, 화장대와 서랍장 등 몇 가지를 차로 옮기니 1톤짜리 용달차가 가득 차도록 자리를 차지했다.

대전에 계신 어머니를 수시로 찾아뵐 때, 손녀딸을 데리고 가면 증조할머니의 귀여움을 받았다. 방문할 때마다 대전 할머니는 증조할머니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늘 진주 할머니라고 부른다. 말이 서투른 탓이려니 했더니 얼마가 지난 하루는 왜 '진주 할머니'인지 안단다. 엉뚱하게도 진주 반지를 끼고 계셔서 진주 할머니란다. 노란 호박 알 반지를 늘 끼고 계셨다. 어머니가 증손녀인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셔서 정이 듬뿍 들었다. 우리 집에 할머니가 두 분이라서 좋단다. 애들도 좋아하니 금상첨화다.

어머니 살림에는 맏딸이 윤년이 들던 해에 마련해 준 안동포 수의와 둘째 아들이 30년 전에 개업할 때 기념품으로 나누어 주던 인주 곽을 소중한 보물인 양, 잘 보관하고 계셨다. 그 곽 안에는 아버지가 쓰시던 도장과 오래된 얼레빗과 참빗, 귀이개도 들어있다. 모두 재산목록 1호로 여기셨다. 어머니는 치매와 중풍은 절대로 안 된다고 금기로 여기며, 우황청심환을 꼭 챙기셨다. 그런데 화장대 서랍 하나가 잠겨있다. 재산 특호를 여기에 감추어 두셨나 보다. 너무 궁금하다. 열어보자고 말씀드렸더니 맏아들 성화에 문을 따셨다. 노란 책보가 보였고 그 속에는 보퉁이가 하나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겸연쩍게 웃으신다. 검은색 두꺼운 무명 광목천 보자기였다. 같은 천을 오려서 바닥 면을 기운 곳도 보인다. 본래 바닥만 두 겹이었으나 그래도 헤져서 다른 비슷한 천을 대고 재봉으로 박아서 기운 것이다. 어머니의 행상 시절 짐을 싸던 보자기이다. 네 귀퉁이에 애기 어불띠처럼 끈을 달아서 동여매기 쉽도록 만들어져 있다.

어머니는 당신의 고개로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먹고 사는 것은 어느 정도 농사로 해결됐으나 논과 밭에서는 수확이 변변치 못해 겨우 식구들의 먹거리만 될 뿐이고 돈을 만들 거리가 되지 못했다. 어려운 행상으로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이집 저집을 다니시며 돈을 벌어 학비를 마련하셨다. 어머니의 자라 목처럼 주저앉은 고개 덕분에 우리 오 남매는 중,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아들 둘은 대학교까지 보내주셨다.

가끔 증평 인터체인지 근처를 통과하며 여우내 동네 앞 미호천을 지날 때가 있다. 지나가다가 차를 멈추고 하천을 내려다본다. 지금 보아도 넓은 하천이다. 저 하천을 눈보라가 날리며 손발이 얼도록 추운 동지섣달에 치마를 걷어 올리고 얼음을 해쳐가며 어머니는 하천을 건너셨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가려면 반 시간도 더 걸린다. 무거운 짐을 이고, 북풍한설을 맞으며 눈물의 고통을 참아내셨으리라. 오늘의 나는 내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이사를 오시던 해에 나는 연구원에서 근무했다. 운이 좋게도 전속 기사가 운전해주는 관용차를 타고 출근을 했다. 차에 오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위를 올려다보면 아파트 13층에서 문을 열고 머리를 반쯤 내놓으신 어머니가 손을 흔들어 주셨다. 아들의 출근 모습이 너무 대견하셨나 보다. 차에 오르기 전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고 손을 흔들며 차에 오르곤 했다. 그 시절에 행복하게 웃으시던 어머니를 뵙는 나는 몇 배 더 행복했었다. 모두가 어머니의 이삿짐 속에 감추어진 보따리 덕분이다. 이제 팔순에 이르니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도 그립다.

이평균

(전) 초등학교 교장

(전) 청주교대 겸임교수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공저:봄, 여름 그리고 가을

수상: 효동문학상 수상(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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