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의 출국

2026.07.07 15:05:32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월드컵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의 축구선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피살사건은 32년이 지난 지금도 간담이 서늘한 충격이다.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의 우승 후보로 꼽히던 콜롬비아 대표팀은 미국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해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탈락 책임을 통감한 에스코바르는 팀이 귀국하기 전 먼저 귀국했다.

고향 메데진의 나이트클럽에서 그를 알아본 콜롬비아 마피아 '산티아고 갈론 헤나오' 형제가 에스코바르에게 자책골을 들먹이며 시비를 걸었고, 언쟁이 격해지자 헤나오의 운전기사 '무뇨스 카스트로'가 나서서 에스코바르에게 총을 난사했다. 이탈리아 명문 AC밀란 이적이 예정되어 있던 27세의 젊은 축구선수는 총탄 12발을 맞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과거 준군사조직 '엘 쿤도르' 등에 소속돼 활동했으며 마약 카르텔과 연결돼 있던 산티아고 갈론이 실제 에스코바르를 살해한 범인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부하인 카스트로의 자백에 따라 카스트로만 43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자백범은 2005년에 모범수로 가석방되어 겨우 10년 정도밖에 수감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했던 산티아고 갈론 헤나오는 올 2월 멕시코 톨루카의 한 식당에서 청부 살인범들에게 사살됐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이 사건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1994년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암살사건에 연루된 마약 밀매업자 산티아고 갈론 헤나오가 멕시코에서 살해당했다고 공식 발표한 대통령은 에스코바르 암살을 다시 언급하며 콜롬비아의 국제적 이미지를 실추시킨 사건이라 개탄했다.

에스코바르의 비극이 재현되진 않았지만 그 후에도 흥분한 팬들의 선수 신변위협은 계속돼 왔다.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일본과의 조별리그 첫 판에서 경기 시작 2분 56초 만에 퇴장당해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콜롬비아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카를로스 산체스'는 가족까지 해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브라질 선수 '페르난지뉴'도 2018 러시아 월드컵 벨기에와의 8강전에서 자책골을 넣어 온갖 조롱과 폭언, 살해위협에 시달렸다. SNS를 통해 페르난지뉴를 '원숭이'라 욕하며 위협한 일부 광팬은 선수의 아내 '글라우시아 호사'와 어머니의 SNS에 몰려가 분풀이를 했다. 가족들은 악성 댓글을 감당치 못해 SNS의 문을 닫고 말았다.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한 홍명보 전 감독이 신변안전에 위협을 느껴 귀국 이틀 만에 LA로 출국했다는 풍문이 돈다. 그가 귀국하는 날 살해하겠다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 때문에 부랴부랴 LA로 출국했다는데, 외신까지 홍명보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화가 많이 나는 심정을 죽겠다거나 죽이겠다고 표현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 못하는 외신들이 다투어 극단적 테러를 우려하고 있는 것을 보며 그들에게 우리의 언어적 문화를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홍명보의 출국이 비난여론을 회피하기 위한 도피성출국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홍 감독 측은 계획된 휴식일정이라며 펄쩍 뛰고 있으나 신변위협 피신설 따위보다 설득력이 있다. 귀국 이틀 만의 출국은 충분히 의혹을 받을만한 행동이었다.

땅에서 넘어졌으면 넘어진 땅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 그가 딛고 일어설 땅은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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