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on 인스타그램
[충북일보] 한적한 주택가, 관심있게 보지않으면 지나칠 수도 있는 골목 입구에 익숙하게 들어서는 사람들이 이어진다. 딱히 식사 시간이라고 할 수 없는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되는 걸음이다. 이른 시간부터 이곳을 찾아오게 하는 것은 브런치부터 저녁까지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양식 기반의 음식들이다. 스테이크, 파스타, 뇨끼 등 대중성에 '순' 스타일을 더한 메뉴를 다양한 구성으로 선택할 수 있다.
2022년부터 입소문으로 알려진 골목 속 레스토랑 '순(soon)'의 황석준 대표가 처음 요리의 매력을 느낀 것은 초등학생 때다. 늘 투닥거리던 누나와의 식사 시간, 석준씨의 김치찌개를 먹고 무심코 건넨 누나의 칭찬은 성취감을 안겼다. 취미로 이어가던 요리를 진로로 결정한 것은 오랜 고민의 결과였다. 로봇과 AI 등 수없이 쏟아지는 영화적 상상 뒤로 현실을 바라봤다. 먹는 것만큼은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 식재료와 맛, 시스템에 대한 기반을 쌓은 뒤 창업경진대회 수상을 기회로 가게 운영까지 해볼 수 있었다. 한식, 일식, 양식, 치킨, 주먹밥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모든 음식에 통하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맛과 수긍할 수 있는 가격선이라는 기준을 세웠다.
'순'은 몇 년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가족들을 설득해 8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탄생했다. 손자와 유독 애착이 깊고 친했던 할머니가 40여 년 사시던 집이다. 석준씨에게 따뜻한 기억이 가득한 곳을 의미있게 쓰고 싶었다. 구상을 위해 다닌 주택 개조 카페와 식당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비슷한 모양을 가졌던 집들도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다른 분위기로 새 옷을 입었다. 실제 운영하는 공간을 이용하며 장단점을 꼽았다. 전기와 수도 등 구옥의 낡은 부분을 개선하고 벽이었던 부분을 터 문을 만드는 등 변신을 꾀했다. 다른 곳에서 느낀 불편 요소를 배제하고자 사소한 소품 하나까지 최선을 다해 골랐다.
주택의 아늑함과 편안함은 남기고 세련된 감성을 더했다. 방과 거실, 테라스 등 구획을 나누고 색감과 배열을 달리 해 질리지 않는 공간으로 꾸몄다. 순 레스토랑 내부는 마당을 바라보는 바 테이블, 숲에 있는 듯한 투명한 테라스, 깔끔한 카페 같은 공간이 공존한다. 여러번 와도 새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철저히 계산한 결과다. 할머니 이름의 끝 글자를 딴 '순'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구석구석 할머니의 무언가가 남아있다. 할머니가 그린 그림을 로고화 한 이미지가 곳곳에 있고 빼곡하게 꽃을 가꾸시던 마당은 몇 개의 테이블과 잘 다듬은 식물들로 채워졌다.
'순(soon)'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골뱅이마늘쫑파스타도 할머니를 떠올리며 개발해 시그니처가 된 메뉴다. 할머니 찬장에 늘 몇 개씩 있던 골뱅이와 냉장고에 꼭 있던 마늘쫑 장아찌를 떠올린 조합이다. 최근 새롭게 출시한 고사리 파스타도 마찬가지다. 고사리의 식감에 은은한 고추기름과 들기름의 고소한 조합은 낯설지만 익숙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숙성과 조리로 맛을 살린 부채살 스테이크도 인기 메뉴다. 부드럽게 익힌 두툼한 고기는 익힌 당근을 이용한 레드매쉬와 특제 소스가 맛을 더한다. 쫀득하게 만들어 살짝 구운 뇨끼는 그 자체의 맛을 바삭하게 즐긴 뒤 머쉬룸 스프에 담가 부드럽게도 먹을 수 있다. 소스에 버무려져 나오는 뇨끼를 아쉬워하던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다양한 구성의 세트 메뉴를 선택하면 여러 요리를 고루 즐길 수 있다. 식전빵과 함께 제공하는 수제버터 스프레드부터 에그베네딕트, 아보카도 토스트, 직접 만들어 사과잼을 더한 잠봉뵈르 중 하나와 파스타, 부드러운 오믈렛과 아보카도를 얹은 김치볶음밥, 뇨끼, 리조또, 삭슈카 중 하나에 음료까지 선택할 수 있는 브런치 세트나 식사 두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 데일리 세트, 260g의 두툼한 스테이크에 식사 하나를 더한 스테이크 세트, 식사 두가지를 더할 수 있는 시그니처 세트 등 누구와 함께 가는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풍성한 구성이 준비된다. 참나물바지락 파스타, 봄주꾸미 콜드파스타, 그릴드쉬림프 콜드파스타, 보코치니 샐러드 등 계절에 따라 제철 재료로 변동되는 메뉴도 예상밖의 즐거움이다.
골목을 나서는 이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음을 기약한다. 곧, 머지않은 시간 다시 'SOON'이다.
/ 김희란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