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의 그림 이야기 - 정약용의 노을빛 치마로 만든 작은 책

2026.07.01 14:47:54

다산 영정.

ⓒ뉴시스
2004년 어느 날, 수원의 한 공사장에 폐지를 줍는 꾸부정한 할머니가 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저기요, 공사장에서 나온 폐지를 좀 가져가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L현장소장은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하세요"라며 허락했다. 그러면서 할머니의 낡은 수레 안을 보니 고물 더미 위에 누런 한지의 오래된 책 3권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이 생긴 L소장은 "어르신, 이 책들 저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고,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허락했다.

L소장은 고마운 마음에 "앞으로 공사장에서 나오는 종이와 박스를 모아 놓을 테니 언제든지 오셔 가져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할머니 수레에 있던 고서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 채 2년간 방치돼 있다가, 2006년 4월, L소장이 KBS 1TV '진품명품' 프로그램에 이 고서를 감정 의뢰하면서 '하피첩'이라는 보물이 세상에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감정가는 1억 원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경매장에 나온 것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7억5천만원에 낙찰받아 보물로 지정하고 소장 중이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하피첩이 20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면서 다산의 다양한 필체를 한 번에 살펴볼 수 있고, 그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이 남긴 문집에는 부인이 보낸 치마를 잘라 하피첩(霞帔帖)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하피첩은 이전에 남양주에 있는 정약용 생가 여유당(與猶堂)에 보관 중이었다. 1925년 대홍수 때 유실될 위기를 맞았다. 그해 여름 한강이 범람하며 여유당 마당으로 물이 밀려들었고, 정약용 4대손 정규영은 하피첩과 다산의 서궤(書櫃)를 안방 다락으로 옮겼다. 밤이 되자 한강물이 안방으로 넘어와 허리까지 차올랐다. 급보를 들은 구조선이 "어서 나오라"고 외쳤으나, 정규영은 "다산 전집을 건져내지 못하면 죽어도 못 나간다"며 서궤를 등에 짊어지고 헤엄쳐 집을 나와 배에 올랐다. 배에서 내려 집 뒤 언덕에 다산 묘소에 책 궤짝을 내려놓고 그는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여유당 등 남양주 한강 변 집들은 홍수에 대비해 주춧돌이 높았다. 그러나 1925년 대홍수 때 한강물은 집들을 삼켰고, 높은 섬돌과 주춧돌도 무용지물이었다. 정규영이 빠져나온 후, 여유당은 배가 되어 떠내려갔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한 고비를 넘겼지만, 하피첩에게 또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6·25 전쟁 때 정약용 5대손이 피란길에서 수원역 근처에서 하피첩을 잃어버린 것이다. 정성껏 보따리에 싸서 피란길에 올랐지만,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분실한 것이다. 당시 그것을 주운 누군가가 집에 보관하다 쓰레기로 착각해 버렸고, 2004년 폐지 줍는 할머니가 주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하피첩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하다.

다산의 후손 정규영이 1925년 대홍수 때 하피첩을 챙기지 않았거나, L소장이 할머니에게서 하피첩을 얻지 못해 '진품명품'에 내놓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물에 잠겨 떠내려갔거나 종이재생공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천만다행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일 것이다.

보물 제1683-2호인 하피첩은 1810년 가을, 다산이 유배지인 강진에서 부인 치마를 재단해 세 개의 서첩을 만들어 두 아들 학연(1783~1859)과 학유(1786~1855)에게 써준 가계첩(家誡帖)이다. '노을빛 치마로 만든 작은 책'이라는 뜻의 하피첩은 치마가 붉은빛을 띠었다고 나온 것이다.

이 치마는 부인 홍씨가 시집올 때 입었던 명주 치마였다. 당시 사대부가 아내의 치마에 글을 남기는 것은 드문 사례였다. 다산은 여섯 폭으로 짠 치마의 헤진 부분은 그대로 두고 성한 쪽을 가로·세로로 잘 마름질해 세 개의 서첩으로 꾸몄다. 다산이 아내가 '부부의 정'을 기억해달라며 보내온 치마에 기록한 내용은 두 아들과 손자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길 바라는 그의 마음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한 것이다.

다산은 자녀 교육에 가장 힘써야 할 시기인 39세에서 57세까지를 유배지에서 보내 아버지로서 직접 자녀 교육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컸다. 그래서 유배지에서 자녀 교육을 위해 편지를 많이 활용했다. 다산은 두 아들과 1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18년 넘는 유배 기간 동안에도 자녀 교육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피첩 내용을 보면 "내가 벼슬이 없으니 농장을 물려줄 수 없다. 오직 두 글자의 신령한 부적이 너희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다. 야박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하나는 근면, 다른 하나는 검소이다. 이 두 가지는 좋은 전답보다 낫고 한평생 써도 남는다." 요약하면, '놀고먹는 식구가 없어야 한다. 이것이 근면이다. 근면하면 부(富)를 생산하고, 검소는 가난을 구제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며 필자는 오래전 우암산 기슭 관우재(觀牛齋)에 살 때, 옆 카페 리모델링 공사 현장 쓰레기 더미에서 버려진 어느 유명 작가 작품 5점을 발견했던 일이 떠올랐다. 사물은 아는 만큼 보인다. 예술 작품은 더욱더 그렇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글이 나간 후, 아파트 쓰레기장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소가 번진다.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70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