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외출 준비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화장하고 옷을 갖춰 입으려면 아무래도 남자들보다 손이 더 가기 마련이다. 평소 화장을 즐기지 않는 나는 외출 준비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도 거울 앞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노년의 나이는 같은 옷을 입어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특별한 모임이 있는 날이면 옷매무새를 몇 번이고 살피게 된다. 하지만 요즘 나를 가장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이다.
불혹을 넘기며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 흰머리는 이제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한다. 두 달에 세 번은 미용실을 찾아 염색을 해야 할 정도로 부쩍 늘어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임을 알면서도 거울 속 흰 머리를 마주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진다. 염색을 반복하는 일도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이렇게 변해 가는데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은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있을까. 얼굴을 비춰 주는 거울은 있어도 마음을 비춰 주는 거울은 쉽게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옛글 「경설(鏡說)」에는 흐린 거울을 보며 매일 얼굴을 가다듬는 거사가 등장한다. 이유를 묻는 나그네에게 그는 잘생긴 사람은 맑은 거울을 좋아하지만 못난 사람은 흐린 거울을 좋아한다고 답한다. 본래 거울은 맑지만 먼지가 쌓이면 흐려지듯 사람의 본성 또한 세상살이 속에서 흐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흐린 거울은 단순히 외모를 비추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매개가 된다.
거울을 보며 얼굴을 만지고 옷매무새를 고친다고 해서 사람의 본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흰 머리를 감춘다고 삶의 본질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겉모습을 가꾸는 데만 마음을 쏟다 보면 정작 중요한 내면을 놓치기 쉽다. 흐린 거울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고치려는 노력이 더 값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하나의 거울이다. 자식은 부모의 말보다 삶의 모습을 먼저 배운다. 그래서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볼 때면 자식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치고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정직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아니면 부끄러운 모습으로 기억될지 두렵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주름은 늘어나고 흰 머리는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남긴 흔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모습이다. 비록 거울 속 얼굴은 예전 같지 않을지라도 자식들에게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온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젠가는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 만큼 늙어갈 것이다. 세월이 얼굴에 남긴 주름은 지울 수 없겠지만 마음만은 더 맑아지기를 바란다. 오늘도 흐린 거울 앞에 서서 내 마음의 먼지를 털어 낸다. 외모보다 마음을 먼저 살피는 일이 노년의 가장 아름다운 단장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