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부실 선거인가, 부정 선거인가. 부정 선거라면 나라가 결딴날 만큼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부실 선거라 해도 파장이 쉽게 가라앉을 수 없는 폭발력을 가진 중대 사안이다. 부정선거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선관위의 행정 미숙으로 단정 짓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여럿인 것도 사실이다.
***선관위가 키우는 부정선거 논란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해 참정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벌어진 나라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점이 충격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부끄러운 현실이다. 국민 주권의 가장 기본이 되는 투표권 행사에 제약을 받는 사태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것을 보면 한참 잘못된 국가 시스템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게 오늘날 우리나라의 수준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밝힌 투표용지 부족 이유는 투표용지 인쇄 기준을 유권자 수 대비 낮게 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이번에 투표용지 부족이 많이 발생한 서울시 송파구의 경우 본투표 용지를 전체 유권자 수의 50%로 정했는데 예상보다 투표율이 높아져 용지 부족 현상이 벌어졌다는 식이다.
그러면 선거관리위원회가 굳이 투표용지 인쇄 기준을 낮게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선관위의 해명은 이렇다. '투표지 인쇄소 확보가 어렵다' '과도한 수량의 투표지가 남을 경우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아연실색할 변명이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위 증언으로 보인다. 이러한 선관위의 성립되지 않는 알리바이를 믿어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부정선거 논란을 선관위 스스로 키우고 있다.
국회의원 총선거와 전국동시 지방선거를 2년 주기로 실시해 오면서 투표용지를 인쇄할 인쇄소 확보가 어렵다면 지금까지 전국 단위 선거를 어떻게 치러왔다는 건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이 인쇄 문제로 투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 밖에 안 되나. 설령 인쇄소 확보가 용이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서울 송파구처럼 유권자 수의 절반만 인쇄하기로 결정한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더구나 선관위는 투표용지 인쇄 예산을 '선거인수의 110%'를 기준으로 확보하도록 요구하고는 실제 집행한 것은 예산 편성액의 56.5%에 불과했다. 나아가 과거 선거에서는 통상 유권자 수의 60~70%의 투표용지를 인쇄했지만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는 50% 인쇄 지침을 내렸다니 선관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과도한 수량의 투표지가 남을 경우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은 또 무슨 얘기인가. 투표용지가 많이 남으면 부정선거 의혹을 받고, 적게 남으면 부정 선거 의혹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는 처음 듣는다. 아예 투표용지가 부족하면 부정선거 의혹도 받지 않고 공정선거 평가를 받는다는 잘못된 신념이 아니라면 해서는 안 될 궤변이다.
그동안 선관위는 헌법적 독립기구라는 위치를 내세워 삼권분립 국가를 지탱하는 감시와 견제에서 벗어나 일탈 상태에 있었다. 무소불위의 극치를 달려온 선관위의 기이한 행적이 연달아 터졌다.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주장이 수년간 계속 이어졌다. 망상에 빠진 전직 대통령은 계엄 선포와 동시에 중앙선관위 서버를 확보하겠다며 군을 불법 투입하기도 했다.
***부정선거는 용납 못할 마지노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은 선관위가 선거만은 공정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정선거는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어 온 국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레드 라인이다. 차마 그런 불행만은 없기를 바라는 국민이 다수라고 믿는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