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북중미 월드컵 한국과 체코의 조별리그 1차전이 열린 경기장에서 관중석의 멕시코 남성이 한국인 유튜버에게 눈 찢기 조롱을 했다. 유튜버의 셀카 화면에 얼굴을 들이대고 양손 검지로 눈을 찢은 이 남성의 정신상태가 아무래도 온전치 않은 듯싶다. 남의 나라 경기를 관전하며 무슨 생각으로 이런 해괴한 짓을 지른 것일까.
멕시코 현지 매체인 '폴리티고'에 남성의 추태가 보도되며 이 남자의 신상이 털렸다. '울리세스 페르난도 베르날 미라몬테스'란 이름의 이 남자는 놀랍게도 할리스코주 토목공학회장이란다. 멀쩡한 직책을 가진 자가 저지른 저급한 인종차별 행위를 전 세계인이 성토하고 나섰다.
우리가 타 인종보다 낫다는 인종우월주의인 레이시즘(racism)은 다른 민족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을 넘어 적대감으로까지 발전한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형성되기 시작한 근대적 형태의 인종차별은 아프리카 노예무역 규모가 커지면서 강화됐다. 인종의 계급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골상학 같은 사이비 과학이론이 등장했는데, 인종차별적 신념을 과학으로 정당화하려는 야비한 시도였다.
손가락으로 눈을 찢는 행위는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는 대표적 인종차별 행위이다. 동양인의 작은 눈을 칭키 아이(chinky eyes)라 놀리는데, 갈라진 틈새 칭크(chink)가 차이나(China)인의 눈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서양식당에서 동양인 여성의 주문을 받은 웨이터가 주문서에 '눈 찢어진 여자(lady chinky eyes)'의 주문이라 쓰는 게 예사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 바다 건너 나라를 여행할 때면 거울 속의 내 눈을 가끔 확인하곤 한다.
칭키 아이가 동양인에 대한 차별적 의미로 굳어진 것은 영국의 해외식민지에 계약 노동자로 대거 이주한 중국인 '쿨리'에 대한 우월의식에서 시작됐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중국보다 형편이 월등히 좋았던 중남미 지역으로 품팔이를 온 중국인들은 거의 노예와 진배없는 열악한 조건에서 혹사당했다. 노역을 견디다 못해 일터에서 사망하는 가엾은 중국 경제이민자를 현지인들은 죄책감 없이 업신여겼을 것이다.
중남미에서는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눈 찢기가 예사로이 일어난다. 아시아 계약 노동자에 대한 조상들의 우월의식이 양지와 음지가 바뀐 지금도 살아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런데 우리에게 상처가 되는 행동을 저지른 그들은 '친근함을 나타낸 가벼운 장난'이라며 반성을 모른다고 들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한 전 축구선수 박지성은 축구계에 만연한 인종차별 사례 중 '손으로 눈 찢기' 행위에 대해 '인종차별적 행동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며 동양인 비하라기보다 동양인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한다고 밝혀 충격을 준 바 있다.
심지어 박지성의 절친인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 '카를로스 테베즈'가 눈 찢기 세리모니를 친구 박지성을 위해 벌인 적이 있었다고 한다. 눈찢기가 인종차별적 행동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는 증거다.
미국인은 멕시코 인을 '젖은 등(wet back)'이라 깔본다.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불법이민자가 등까지 물에 젖는 상황을 빈정거리는 표현이다. 우리가 들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젖은 등'이 멕시코 인에겐 큰 모욕일 것이다.
작정하고 저지른 잘못보다 어설프게 저지른 잘못의 뒷수습이 힘든 법이다. 망신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