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에는 기차역이 많다

2026.06.14 15:32:47

양선규

시인·화가

한낮의 열기가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있다. 청사초롱, 자귀꽃, 석류꽃 등이 여름을 더욱더 여름답게 하며 더위에 지친 심신에 그나마 꽃의 기운으로 발걸음 옮겨, 둘레길 걷거나 이른 아침 채소밭에 앉아 잡초를 뽑다 보면 어느새 환한 햇살이 내 등을 비춘다.

영동역을 중심으로 상행선에 각계역, 심천역, 하행선에 미륵역, 황간역, 추풍령역이 있다. 철로가 보이는 곳에 살아서일까, 이른 아침 기지개를 켜는 순간에도 달리는 기차를 보게 되고 저녁나절 집으로 가는 길에도 기적 소리 울리며 멀어져 가는 기차를 바라본다. 무심코 먼 산 바라볼 때에도 기차는 힘차게 씩씩거리며 달려 오기도 하고 달려가기도 한다.

2026. 심천역(근대문화유산)

ⓒ양선규
대전이나 서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나절, 옥천, 이원을 지나 듬성듬성 마을을 이루는 여름철, 한가한 집들을 지나, 철교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금강을 건너면 밤의 불빛들이 깜박이고 있는 윤중호, 김석환, 박명용 시인이 살던 심천역을 지나 내가 살고 있는 영동역에 이른다.

80년대만 해도 사람 붐비는 큰 역이었는데,/언제부턴가 한가로운 간이역 되었다/산업화로 이농 현상이 생기고 노령화되면서/저출산으로 사람이 귀해 그리되었을 것이다//그러고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한 시절이다/걷는 길도 왕래가 줄어들고 인연 다하면/마음 휑한 자리 잡초 무성하고 고요하다/어쩌다가 가끔 한 번 섰다 가는 간이역 심천,/오늘도 기차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 뜸하다//우리도 나이 들어 들숨 날숨 희미해지고/생각 잠잠해지면 언젠가는 간이역 아니겠는가/오고 가는 사람 드문 길 위에 개망초 피었다/내 몸에도 간이역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2023년 계간《시와정신》여름호, 양선규 시,「간이역」전문

요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갈수록 사람들이 줄어들고 간이역에는 오르고 내리는 사람 드물다. 미륵역은 아주 오래전에 폐역이 되었고 각계역은 제한적으로 운행되며, 간이역이 된 심천역, 황간역, 추풍령 역도 아슬아슬하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기차는 마침표를 찍는 순간 바람처럼 호선을 그리며 급히 또 다른 시간으로 달려가고 있다.

어느 나라나 도시는 번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소멸하기도 하는 게 당연한 이치겠지만, 내가 사는 곳이 인구 소멸 지역이라면, 그리 마음 가볍지 않은 게 사실이다. 1970년대 약 11만 명, 1980년대 약 9만 명, 1990년대 약 7만 명이던 영동의 인구는 2026년 5월 말 기준, 43,031명으로 줄어, 인구 소멸 지역이라는 호칭이 그리 낯설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오고 가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이던 영동역, 운동장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던 가을 운동회, 영동 장날이면 골목마다 사람들 가득했던 시절, 이제 다시는 그러한 풍경으로 돼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정부에서 일관성 있는 지역 살리기 정책 자금 지원 활성화와 영동군의 지속적인 문화, 예술, 관광 벨트 육성으로 이동 인구라도 점점 늘어난다면 고환율, 고금리, 고유가 시대에도 묵묵히 고향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살아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소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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