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전문기관, 제도와 다른 현장

2026.06.11 13:41:32

이윤지

간호사·작가

희귀질환 전문기관에서 정작 희귀질환자가 진료를 거부당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 진료지원체계 구축을 통해 환자의 진료 접근성을 높이고 지역의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 권역별 희귀질환 전문기관을 지정·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7개소였던 전문기관은 올해 19개소로 확대됐다. 대부분 상급종합병원 또는 그에 준하는 대형 대학병원으로, 희귀질환 진료·연구·등록통계 사업을 수행하는 권역 거점병원들이다.

그러나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응급상황에서 희귀질환 환자가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5월 석가탄신일 연휴 새벽 3시, 한 6세 희귀질환 환아가 밤새 반복된 구토 증상으로 응급상황에 놓였다. 해당 질환은 스스로 혈당을 조절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어 지속적인 구토가 이어질 경우 저혈당과 케톤산증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의식 저하 위험도 크다. 보호자는 가장 먼저 지역 내 희귀질환 전문기관에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이후 119 구급대원이 직접 병원에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으나 "희귀질환 환자는 진료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초기에는 수용 가능하다는 답변이 있었으나, 구급대원과 병원 간 통화 과정에서 환아의 희귀질환 병력이 알려지자 결국 수용이 거부됐다. 보호자와 구급대원은 새벽 내내 다른 지역 병원을 수소문해야 했다.

이 같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5년에는 경련 증상을 보인 12세 희귀질환 환아가 119를 통해 이송을 요청했으나, 지역 내 희귀질환 전문기관에서 초기에는 수용 의사를 밝혔다가 이동 중 환자의 희귀질환 병력이 확인되면서 입장을 번복했다. 환아는 약 30~40분 동안 구급차 안에서 대기한 끝에 서울 소재 병원으로 이송됐다.

2024년에는 저혈당 쇼크로 의식을 잃은 두 돌 미만 영아가 희귀질환 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응급실 앞에서 약 1시간 동안 대기하다가 결국 다른 병원을 찾아야 했던 사례도 있었다.

물론 전문 인력의 부재, 병상 부족 등 현실적 한계도 존재한다. 그러나 응급의료의 본질은 생명을 살리는 데 있다. 저혈당 쇼크, 경련, 의식 저하와 같은 응급상황에서는 질환의 이름보다 환자의 상태가 우선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이 희귀질환 전문기관으로 지정된 병원에서조차 발생한다면 제도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된다.

질병관리청이 전문기관을 확대 지정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제도의 성패는 지정 기관의 숫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환자를 얼마나 책임지고 진료할 수 있는지에 의해 평가된다.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점검하고 보완하는 일이다.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관의 확대가 아니다. 생명이 위급한 순간 "희귀질환이라서 안 된다"가 아니라 "일단 살리고 보자"고 말하는 의료체계다. 희귀질환 전문기관이라는 이름이 명목에 그치지 않고 환자와 가족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망으로 작동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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