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성이 올라오기 전에 한 번 더 쑥을 뜯기로 했다. 새벽에 묵정밭으로 가니 지난번에 벤 쑥이 어느새 다시 자라 무더기마다 다복다복하다. 이 밭은 봄이면 쑥밭이 된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오염될 게 없어 쑥도 깨끗하다. 이슬을 털어내며 낫으로 쑥을 베어 마트 장 가방 두 개를 부지런히 채우고 나니 벌써 윗단까지 해가 들어와 있다.
쑥이 좋다는 것은 단군신화에도 나와 있다. 얼마나 좋으면 곰을 사람으로 변하게 했겠는가. 겨울을 이기고 일찍부터 새순을 내미는 쑥은 생명력이 강하다. 어디서든 쑥쑥 자라서 쑥이라는 말도 있다. 재작년부터 지인에게 쑥 덖는 방법을 배워 쑥차를 만들어 두고 저녁으로 한 잔씩 우려 마신다. 4월부터 5월 초까지는 쑥이 연해서 나물이나 떡을 해 먹고, 5월 중순을 지나면서 질기고 성분이 진해진 쑥은 주로 약용으로 쓰인다. 미네랄과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고 노화 방지 및 면역력을 높이는 효능 외에도 여러 가지 효능이 많다. 과다 섭취하지만 않는다면 아주 좋은 건강식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 예전에 쑥뜸을 뜨고, 여름날 모깃불을 놓을 때 썼던 기억도 난다. 아메리카에서도 원주민들이 맹수나 악령을 물리치는 의식을 치를 때에 쑥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지난주에 한차례 쑥을 뜯었었다. 친정엄마 생신에 맞춰 쑥가래떡을 해갔기 때문이다. 잔뜩 베어 와 깨끗하게 다듬고 씻어 삶은 후, 꼭 짜서 쌀과 함께 방앗간에 갖다주고 가래떡으로 빼 왔다. 쑥이 많이 들어가야 색이 예쁘게 나온 말랑말랑한 가래떡은 모두에게 인기가 좋았다. 맛있게 먹고 집집이 조금씩 나눠 싸주기까지 했다. 나중에 엄마한테 전해 들었는데, 막내 이모는 때마침 다니러 온 딸 사위, 손주들까지 가져간 떡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몇 번이나 얘기하셨단다. 어찌나 뿌듯하던지, 힘들었던 과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쑥의 효능과 더불어 나타나는 떡의 효능도 꽤 좋은 것 같다.
남편도 떡이 맛있었나 보다. 더 먹을 수 없어 좀 아쉽다고 했다. 원래 남편은 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신혼 시절 어린 쑥을 뜯어와 콩가루를 묻혀 정성껏 쑥국을 끓였는데 숟가락도 대지 않아 서운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쑥이 몸에 좋다며 먹기 시작했다. 쑥차도 자주 우려 마신다. 오래된 부부는 정으로 산다더니, 남편이 아쉬워 하니 힘들 걸 알면서도 왠지 또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어쩌랴.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본격적인 쑥 삶기에 돌입했다. 어제 밤늦도록 다듬은 쑥을 먼저 세 번 정도 깨끗하게 씻어 건졌다. 쑥을 삶을 물엔 식소다를 한 스푼 넣어준다. 떡에 들어갈 쑥은 푹 삶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삶는 것보다는 적당히 나누어 삶는 게 시간이 걸려도 힘이 덜 든다. 중간중간 물을 보충해 가며 대공이 문드러지도록 삶아내기를 얼마나 했을까, 마지막까지 삶아내고 보니 부엌과 거실이 온통 수증기로 가득하다. 내가 마치 곰이라도 된 듯해 웃음이 났다.
나는 쑥떡의 효능을 믿는다. 쑥에는 철분과 칼슘도 풍부하다고 하니, 남편도 그렇지만 골다공증이 심한 어머니 간식으로도 훌륭할 것 같다. 다 삶아내고 남은 물을 걸러 따로 담아 놓으니 꼭 약탕관에 진하게 달여낸 보약 같다. 이건 남편이 반신욕 할 때 쓸 입욕제이다.
드디어 장장 이틀에 걸친 쑥과의 씨름이 끝났다. 어깨도 결리고 다리도 아프다. 하지만 내 정성이 가득 담긴 쑥떡의 효능이 발휘되기만 한다면 내년에도 기꺼이 곰이 될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