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가 성공 비용이라고?

2026.05.27 15:37:42

이정균

시사평론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발목 잡힌 한국 경제가 신음하고 있는 걸 온 국민이 간신히 버티고 있다. 그럼에도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이른바 3고(高)를 "위기의 전조가 아니라 도약의 마찰음" "한국경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성공의 비용"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책임 회피성 발언이며 국민을 바보로 알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말이다.

***국민을 바로로 아나

청와대 정책실장은 통일외교안보에 관한 사항은 제외하고 대통령의 국가정책에 관한 사항을 보좌하는 막중한 직책이다. 직급은 장관급이지만 권한은 경제부총리나 과학기술부총리보다 강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고 공정거래위원장, 금융감독원장, 국세청장 등 경제 분야 실세들의 인사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은 개인의 사견이 아니라 대통령의 의중과 정책을 반영한 것으로 국민은 받아들인다.

3고에 짓눌려 국민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데 국가정책을 주무르는 청와대 정책실장이 국민을 위로하며 올바른 정책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고 오히려 성공 비용이므로 감내하라는 요구를 하니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재야 경제학자가 이같은 주장을 했다면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중의 하나로 참고할 만 하다는 세평을 받을 수 있으나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는 정책실장이라면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망언이다.

지금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서민들은 죽을 맛이다. 금융감독원의 최근 통계에는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0.1% 수준인데 중소기업 연체율은 0.6%~0.8%대로 높아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이 현격하게 어려움을 나타낸다. 대기업은 수출을 통해 고환율과 글로벌 수요의 덕을 보지만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로 인해 원가상승 폭탄을 맞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성공 비용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데이터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5%, 1년 전보다 2.6% 상승했는데 2024년 7월의 2.6%에 이어 21개월 만에 가장 크게 뛴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 등을 실시해 물가 상승률을 억제한 결과가 들어있다. 다른 것 길게 지적할 필요가 없다. 보통란 계란 한판이 만원에 육박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물가를 대통령과 정책실장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러니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올 리 없다.

고용지표는 어떤가. 국가데이터처의 고용동향에는 지난 달 취업자 증가 폭이 7만 4천명으로 16개월 만에 최저였고, 15세 이상 고용률은 0.2%포인트 떨어진 63.0%로 고용률이 하락한 것은 2024년 12월에 이어 16개월 만이다. '고용 없는 성장' 구조가 고착화 되는 것이다.

오로지 반도체 특수 때문에 증시가 사상 최고점을 찍고 경기가 좋아진 것처럼 착시현상을 보이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분야의 기업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심화된 K자형 양극화 극복과 반도체 이후 신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야 머지않아 도래할 변곡점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데 청와대의 인식은 이와 달라 보인다.

***K자형 양극화 심화

물가를 이기는 정부는 없다. 물가를 잡는 가장 고전적인 수단은 기준금리 인상인데 쉽지 않다. 하반기 금리 상승 압력이 현실화되면 2천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와 천조원이 넘는 국가채무를 어떻게 감당하나. 지금도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를 넘어서며 서민들은 원리금 상환 부담에 등골이 빠질 지경이다. 고물가를 비롯한 3고가 성공 비용이라는 막말은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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